물결님 믿기지 않지만 저는 과거에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였대요.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특별히 편식하는 돌멩이레터 40호 | 풍국면
한 그릇에 담긴 뭉근한 마음
물결님 믿기지 않지만 저는 과거에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였대요.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특별히 편식하는 건 아닌데 밥 한 그릇을 다 먹이기가 그렇게 힘들었다나요. 그런 제가 냄새만 맡아도 좋아서 껌뻑 넘어가는 유일한 음식이 바로 할머니께서 끓여주시는 된장찌개예요. 할머니는 뚝배기 안에서 자글자글 끓고있는 된장찌개를 상 위에 올려주실 때마다 이 말씀을 덧붙이셨죠. “오늘은 드디어 밥 두 공기 먹겠네!”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지금도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묻는 때면 할머니의 된장찌개라고 답해요. 도시 생활 중 도망치듯 달려가는 고향의 품에 그 된장찌개가 있고, 그 찌개 속에 늘 변함없이 뭉근한 할머니의 마음이 있어요. 물결님에게도 그런 음식이 있나요? 오늘은 90년째 모두의 한 끼를 든든히 채워주겠다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국수를 만드는 ‘풍국면'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모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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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국면
물결님 대구 가보셨어요? 대구는 납작만두, 동인동 찜갈비, 막창구이, 누른 국수, 북성로 우동 등 먹으러 가야 제맛이라 할 만큼 여러 대표 음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대구의 소울푸드를 꼽는다면 국수라고 할 수 있어요. 대구는 내륙 분지 도시라 비가 오는 날이 적고 일조량이 풍부해요. 국수를 건조시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덕에 대한민국 국수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될 수 있었죠. 과거나 지금이나 전국에서 국수를 가장 많이 먹는 도시도 대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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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는 비교적 값이 싸고 건조해두면 오래 보관할 수도 있어서 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이었어요. 게다가 금방 삶아 꺼낸 면에 육수만 부으면 맛있는 한 끼가 되니 쉴 틈 없이 빨리 움직여야 하는 시장 상인들과 손님들에게 좋은 식사가 되어주었죠. 대구 서문시장이 유독 국수로 유명한 것도 그 영향이에요.
1933년 격변의 시기, 배고픈 이들을 풍요롭게 하고 나아가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국수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국내 최초 국수 기업인 ‘풍국면(豊國麵)’이 문을 엽니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무려 90년 동안 묵묵히 국수 외길을 걸어오고 있어요.
세상을 배부르게 하는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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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국수 산업은 일본인들의 자본과 기술에 장악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음식에 비해 값이 낮은 하얀 소면(素麵)이 유행하면서 풍국면을 포함해 지금 삼성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 등 여러 국수 기업이 뛰어들기 시작하죠. 게다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구호 원조품이던 밀가루가 사람들 사이에 무상으로 풀리면서 본격적인 국수 전성시대가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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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국수의 유행이 지속되면서 풍국면은 대구에서 사랑받던 누른 국수를 ‘칼국수'라 작명해 국내 최초로 출시하고 전국으로 유통했어요. 이후 1960년대에 들어서며 삼성상회가 운영을 중단했을 때는 이들의 ‘별표 국수’ 거래처를 인계받아 멈추지 않고 국수 산업을 이끌었죠. 그 결과 1970년대에는 마침내 연 매출 30억 원을 돌파하며 국내 건면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대표 기업으로 우뚝 섭니다.
하지만 물결님, 높은 산일수록 더 센 바람에 자주 맞서야 하는 법이에요. 빠르게 진행되는 사업화에 따라 막강한 자본을 가진 식품 대기업들이 건면 시장에 뛰어들면서 단단해 보이던 풍국면에게도 혹독한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 시기 수 많은 국수 공장이 문을 닫았어요. 국내 최초 겸 최고의 국수 기업을 이대로 잃을 순 없었던 최정수 대표는 국수를 향한 자신의 진심을 이해함과 동시에 새로운 관점으로 이 위기를 넘어서게 도와줄 유일한 사람인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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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칠맛: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
아들 최익진 현 풍국면 대표는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MBA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그룹을 거친 후 한 증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풍국면의 한 해 매출이 12억, 하지만 부채는 그보다 1억 많은 13억을 기록하던 최악의 상황이었죠. 최익진 대표는 1톤 트럭을 몰고 동네 구멍가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유통망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황이 쉽게 나아지진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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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최익진 대표는 현재 수준의 자본과 영업력으론 기업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요. 그리고는 ‘이길 수 없으면 즐긴다'는 전략으로 관점을 바꿔 식품 대기업과 공생할 방법을 고안하죠.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국내 최초로 대형마트의 자체 상표 제품, 일명 PB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었어요. PB 상품의 개발은 풍국면의 강점인 역사와 품질과 대형 마트의 유통력과 판매력이라는 강점을 모두 살릴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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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당시 국내 최초 대형 유통 마트인 ‘이마트’에 PB 제품의 개발을 제안하고 마침내 납품권을 따내요. 성공적인 출시와 반응에 힘입어 코스트코와 CJ의 제일제면소의 협업 기회까지 따내면서 풍국면은 찾아가는 기업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기업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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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진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손쉽게 돈을 벌자고 제품의 질을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쏟아지는 주문량에도 고품질의 국수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한 해 매출에 해당하는 금액을 과감히 투자해 국내 국수 기업 최초의 자동화 공정 설비를 갖췄어춰요. 이후에도 건면 업계 최초로 진공 반죽기를 개발하고 최근에는 핸들링 로봇을 시험적으로 도입했어요.
풍국면이 유독 '최초' 타이틀을 많이 가지고 있는 바탕에는 끊임없는 도전이 있어요. 최초로 ‘칼국수'를 작명하고 대형 유통 채널에 1호 PB 상품을 납품하는 유통 혁신을 이뤄내는 등 어려움 앞에서 끊임없이 돌파구를 찾아내는 길을 택해온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최초’라는 타이틀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더 나은 품질을 향한 집념과 거침없는 투자 정신은 마침내 풍국면을 대체 불가능한 기업으로 세워냈어요.
"'밀가루 좋은 거 써라' ,'땡 빚을 내더라도 직원 월급 제때 줘라' '경쟁은 큰 업체와 해라' 부친이 늘 강조하신 말씀이죠."
- 최익진 대표 (매일신문, 2018)
국수를 대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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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님은 보통 어떤 때에 국수를 드시나요? 전통적으로 국수는 밀가루가 귀했던 시기에 결혼식이나 생일잔치, 환갑잔치와 같이 특별한 날에 귀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지던 음식이었어요. 긴 면발만큼이나 오랜 시간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있죠. 그래서 국수를 대접한다는 건, 그 사람이 강건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일과도 같아요.
풍국면이 외식 브랜드인 ‘풍국면 프랜차이즈'로 나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물결님께 전하고 싶은 마음을 국수 한 그릇에 담아 직접 대접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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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외식 브랜드가 남들과 다른 재료와 조리법을 더하는 데 집중한다면, 풍국면은 오히려 덜어내는 것에 집중해요. 오랜 시간 국수 업계를 지켜온 오리지널리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풍국면이 만드는 국수에서 찾아볼 수 없는 3가지를 물결님께 소개할게요.
1. 순수하고 완전한 면 - 색소와 첨가물이 없다.
2. 국수가 가장 맛있는 온도 40℃ - 뜨겁거나 차가운 국물은 없다.
3. 매일 아침 담그는 정성 - 공장 김치는 없다.
풍국면은 억지로 면발을 쫄깃하게 만들기 위한 인공 첨가물과 색소를 넣지 않아요. 이미 건조 과정부터 면발의 쫄깃함을 지켜냈기 때문에 인공적인 힘이 필요하지 않죠. 국수가 가장 맛있게 먹기 좋은 온도도 찾았어요. 너무 뜨겁지 않게 오랜 시간 뭉근히 끓인 육수는 국수를 더 감칠맛 나게 만들죠. 국수와 함께 곁들이는 김치도 신선하게 하루에 두번 씩 꼭 직접 담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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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님, 저는 좋은 맛이 정성에서 우러난다고 믿어요. 오랜 시간 풍국면이 쏟아온 정성을 알고서 상 위에 올려지는 풍요로운 국수 한 그릇을 바라보면 왜인지 뭉클해질 뿐더러, 그 맛도 다르게 느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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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신념만큼이나 풍국면이 중요하게 지켜오는 가치가 있어요. 그건 바로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정성을 지키는 일이죠. 특히 최익진 대표는 ‘정년 없는 고용’을 지키고 있어요. 풍국면의 최고령 직원은 73세, 스스로 나가지 않는다면 내보내지 않아요. 그뿐만 아니라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낮잠 시간도 주어져요. 직원들에게 있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스스로 생기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싶어지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경영진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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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힘든 시기, 경쟁자와의 공생을 택했던 풍국면은 지역사회의 공생을 위해서도 힘써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는 일정 기간 모든 가맹점의 로열티를 아예 받지 않았어요. 또 코로나 유행 초기 최대 감염자를 기록했던 대구의료원을 비롯한 다섯 군데 병원에 약 12,600명의 의료종사자를 위해 국수를 기부하기도 하고요. 지난해에는 지역 취약계층 어르신들의 생활 연계를 위한 ‘풍국면 사회공헌점’도 열었어요. 연계 기업 임직원 전용 식당인 이 지점에서는 어르신들이 부담 없이 일하며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나아가 안정적으로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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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너무나도 많아요. 어느 날에는 풍국면을 넘어설 새로운 국수 브랜드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풍국면이 이토록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건 누구보다 정직하다는 걸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90년이라는 시간 동안 국수와 사람들을 향해 묵묵히 노력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자신을 향한 굳건한 믿음이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적 관점에서 벗어나 현재에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된 거죠.
종종 물결님의 노력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몰라줘도 괜찮아요.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스스로가 알면 그것 자체로 힘이 되니까요. 풍국면은 지금도 그 마음을 국수 한 그릇에 담아 전하고 있습니다.
"제게 국수는 정직이에요. 소비자와 약속을 지키는 정직한 기업으로 키워나가고 싶어요."
- 최익진 대표 (매일신문, 2018)
1월 19일 목요일,
돌멩이레터 41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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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omment ✏️
오늘은 물결님께 제 고향 대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는 국수 점포가 즐비한 서문시장 바로 옆에 있는 학교를 다녔어요. 자습하던 날이면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던 시장에서 삼겹살 짜장면, 버블티, 칼제비(칼국수와 수제비가 함께 들어간 국수), 와플 등등 매주 다른 음식을 맛봤던 기억이 나요. 그때 처음으로 먹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된 것 같아요. 음식에는 늘 이야기가 있어요. 음식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대를 찾기도 하고, 함께 가진 추억을 다시 꺼내기도 하죠. 오늘은 정말 진심으로 물결님의 소울푸드가 궁금해요. 함께 담긴 이야기도 그렇고요. 세상엔 음식으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모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건강한 마음에 새기는 좋은 이야기로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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