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이었던 것 같아요. 올해도 어김없이 부모님이, 막 추수한 쌀을 10포대 사 오신 날이요. 제 가족의 1년 돌멩이레터 33호 | 도정공장
신선한 충만
3주 전이었던 것 같아요. 올해도 어김없이 부모님이, 막 추수한 쌀을 10포대 사 오신 날이요. 제 가족의 1년 밥상을 책임질 쌀입니다. 밥맛이 좋기로 유명한 경기도 이천 태생의 부모님 덕에 저는 매년 막 수확한 햅쌀을 먹곤 해요. 쌀을 사는 날, 저녁 시간에는 꼭 그 쌀로 밥을 해 먹는데요. 한술 뜨고는 제게 얼른 먹어보라며 재촉하시죠.
종일 바빠서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날, 그런 자신을 발견하는 날이면 괜스레 슬퍼지곤 해요. 그럴 땐 근처 자주 가던 식당에 가서 꼭 든든하게 먹어요. 그러면 제 자신을 챙긴 듯한,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들어요. 오늘의 돌멩이를 알게 된다면 나를 챙기고픈 마음이 조금 더 들 수도 있겠어요. 당일 도정, 당일 배송을 원칙으로 직접 벼 농사를 짓고 쌀을 판매하는 쌀 브랜드 '도정공장'을 소개해드려요.
- 초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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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공장
늘 옆에 있지만 제대로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것. 바로 쌀이 아닐까 싶어요. 매일 먹고는 있지만 그만큼 특별하다고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도정공장의 이용인 대표도 그랬어요. 서울에서 패션 편집숍을 운영하던 이용인 대표는 어느 날, 집에 쌀이 떨어진 것을 알게 돼요. 그리곤 직접 쌀가게를 찾아나서요. 평소라면 집 근처 마트에서 쌀을 샀겠지만, 이왕이면 조금 더 좋은 쌀을 먹고 싶었거든요. 예상했듯, 서울에서 쌀가게를 구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꽤 고생해서 한 가게를 찾았죠. 그런데 거기서 찾을 수 있었던 건 오래된, 묵은쌀뿐이었어요. 당연히 밥맛도 좋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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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공장
방법을 찾던 이용인 대표는 고향 친구인 신민욱 대표에게 쌀을 구해달라고 부탁해요. 신민욱 대표는 7년 넘게 경기도 이천에서 농기계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괜찮은 쌀을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죠. 사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어요. 쌀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쌀이 거기서 거기지'라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신민욱 대표가 건네준 쌀로 밥을 지어먹고 나서야 그 생각이 바뀌었어요. 정말 맛있었거든요. 구별되는 맛이 있는, 맛이 있는 쌀이 존재했던거죠. 그리곤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어요. '왜 이 쌀은 맛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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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공장
쌀의 신선함
정답은 쌀의 도정 시기에 있었어요. 물결님, 우리가 만나는 모든 쌀은 '도정' 과정을 거치는데요. 도정이란, 볍씨에서 겉껍질인 왕겨와 속껍질인 겨층을 벗겨내는 것을 말해요. 거칠한 부분을 벗겨내어 우리가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하는 작업이죠. 이용인 대표가 먹은 쌀이 맛있었던 이유는 이 도정 시기 때문이에요. 많은 유기물을 지니고 있는 쌀은 도정 후 보름 정도가 지나면 산화가 시작 돼요. 이 과정을 겪으면서 쌀은 본연의 색과 맛을 잃고 다른 맛으로 변해요. 고유하게 지니고 있던 맛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죠. 그래서 쌀은 도정 직후에 바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어요. 통상적으로 쌀의 신선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도정 후 2주 이내 섭취를 권장해요.
이용인, 신민욱 대표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이 둘은 쌀을 신선식품으로 접근해요. '도정공장'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따왔어요. 도정공장의 모든 쌀은 당해년도에 수확한 볍씨를, 주문 직후에 도정하여 당일 배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말 그대로 도정 공장인 셈이죠. 덕분에 고객들은 산지 직송의 수준으로 쌀을 받아보고, 소비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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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공장
신선함을 지키기 위한 노력
도정공장은, 고객들의 긍정적인 경험이야말로 브랜드가 지속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정공장은 잘 알고 있어요. 그 시작은 좋은 품질의 쌀을 길러내는 것이에요. 도정공장은 처음에는 벼의 수확과 도정만 했었어요. 그러다 직접 농사도 짓기로 결심하죠. 농업대학에서 농사를 배우기도 하고요. 경기도 이천에서 나고 자란 30년 이상의 전문 농부들을 만나 토양 분석부터 재배, 도정까지 책임져요. 도정공장의 상품 상세페이지를 보면 물결님이 구매할 쌀을 길러낸 농부는 누구인지, 품종은 무엇이며 언제 수확했는지, 어떤 논에서 재배했는지, 사용한 농기계 이름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어요. 모종부터 재배, 도정, 밥을 짓기 전 순간까지 모든 과정에 도정공장이 함께 하는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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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품을 구성하는 방식이에요. 잘 길러낸 쌀을, 고객이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해요. 도정공장은 상시로 새로운 품종의 쌀을 선보여요. 우리가 매일 봐서 놓치곤 하지만, 쌀은 매우 섬세한 곡물이에요. 그 품종에 따라 맛과 식감, 질감, 어울리는 재료 등이 모두 다르죠. 도정공장은 고객들이 쌀의 다양함을 맛볼 수 있도록 매년 농부나 전문가들과 논의하여 새롭게 선보일 품종을 결정하기도 해요. 2021년의 하이아미, 예찬미, 미소미 2022년의 밥의진미, 진옥 등 그동안 다양한 품종을 선보였어요. 또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쌀의 품종을 섞지 않고, 하나의 품종으로 구성된 단일미로만 판매해요. 각 품종을 좀 더 선명히 느낄 수 있도록요. 마지막으로 고객이 쌀을 받는 순간이에요. 쌀의 산패를 막기 위한 일부 진공 포장을 제외하고, 도정공장의 모든 제품은 종이로 포장돼요. 수분에 취약한 쌀을 보호하고 불필요한 포장을 막기 위해서죠. 봉투에는 벼를 수확한 날짜와 도정 날짜가 찍힙니다. 또 맛있게 밥을 짓는 법, 쌀의 보관법 등이 적힌 안내문을 함께 동봉하죠. 가장 좋은 컨디션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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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공장
" 쌀도 신선 식품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려고 합니다.
저희가 온도를 5도로 유지하며 보관하고 도장한 신선한 쌀을 꼭 냉장 보관해달라고 부탁드려요.
2주 안에 소비하라는 부탁도 하고요. 그리고 정말 드셔보신 분들의 긍정적인 경험이
또 다른 고객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 도정공장 (Meta,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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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cm의 세상
쌀의 모양만 보면 아주 심플해요. 아주 작고요. 발음은 또 어떻고요. '한 톨' 어쩐지 아주 작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세계는 아주 크고 복잡해요. 도정공장의 쌀을 주문하려 하면 '분도'를 선택하게 되어 있어요. 분도는 볍씨에서 왕겨를 어느 정도로 벗겨내는지에 따라 쌀의 이름이 결정되는데요. 그 차이에 따라 맛이 미세하게 달라집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만나는 백미는 왕겨를 120% 벗겨낸 12분도 백미에요. 0.5cm가 채 안되는 이 작은 쌀 한톨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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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공장
쌀은 어느 곳을 가든 도화지 같은 역할을 해요. 요리에 따라 다른 질감, 맛을 만들어내죠. 밥으로도 만들고, 죽으로도, 리소토로도 만들어져요. 반찬과의 궁합은 어떻고요. 도정공장이 알려지면서 장반찬전문 브랜드 게방찬, 헬로네이처, 고잉메리 등 많은 브랜드에서 도정공장을 찾았어요. 도정공장의 쌀을 이용해 세프가 밥을 지어주는 현대라이브러리 쿠킹 스튜디오, 채소 친화 식공간 베이스이즈나이스와의 '식사회' 등 자신들의 쌀을 경험해볼 수 있는 자리들도 마련하고요. 도정공장은, 이처럼 모습은 심플하지만 무엇보다 많은 다양함을 담아내는 쌀의 단정함을 패키지에 잘 녹여냈어요. 다른 무늬나 장식 요소는 일절 없이 한 컬러의 종이에 쌀 품종 이름만이 적혀있죠. 여기에 다양함을 더하는 건 어디까지나 물결님의 몫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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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공장
" 쌀은 정말 도화지 같아요. 저희가 정성껏 도정하여 고객에게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이제 고객님 손에 달렸잖아요. 구수한 밥이 될 수 있고, 매력적인 솥 밥이나 색다른 리소토가 될 수 있고요. 이렇게 쌀의 역할이 식탁 위에서 더 다양해질 수 있도록, 저는 좀 더 좋은 품질의 쌀을 계속 공급해야죠." - 도정공장 (Meta,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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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공장
이번 레터를 쓰면서 유달리 단어를 많이 검색했어요. 당장 '도정' 부터요. 평상시에 쓰지 않는 단어에다 그것도 언제나 혼자 쓰이는 단어 '쌀'과 붙어있어 검색을 해봤죠. 또 분도, 미질, 고래실논. 처음 굴려보는 발음 탓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라의 사전을 여는 느낌이었어요. '신선하다' 도 찾아보았어요. 신선함을 말하면 언제나 초록과 빨강이 먼저 떠올랐거든요. '신선함과 쌀?'이라는 의문으로요. 하나하나 찾아보며 0.5cm의 세상이 참 크다고 생각했죠.
글을 쓰기 위해 둘러본 도정공장의 SNS에는, 도정공장의 쌀로 지은 밥 사진이 가장 많았어요. 그리고 적힌 글들. 다시마물에 쌀을 불리고, 30분간 조리를 한 후 뜸을 들이기 전 버터를 넣고, 마지막에 참기름을 두어 바퀴 돌린다는 글. 밥을 짓는 일이 이렇게 섬세한 일이었나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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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공장
아마 이용인 대표가 신민욱 대표에게 받은 쌀로 지은 밥을 먹었을 때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상상했어요. '이런 세계가 있다고?' 싶은 거죠. 언제나 새로운 건, 없었던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있는 것에 한 번쯤 깊이 담겼을 때 생겨나는 것 같아요. 도정공장이 가고자 하는 지향점은 분명해요. 개인의 입맛이나 음식 메뉴에 맞는 쌀을 잘 골라 먹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이를 위해 직접 쌀 품종을 개발하기 있고요, 버섯이나 곤드레 등을 동결건조해 만든 간편솥밥을 개발하고 있어요.
당일 도정, 당일 배송이라는 유통 시스템을 만든 도정공장은 앞으로 또 어떤 신선함을 물결님께 보여줄까요?
10월 20일 목요일,
돌멩이레터 34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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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님 밥 드셨나요? 저는 오늘만 해도 세 번 들은 것 같아요. 가족에게 1번, 동료에게 2번이요. 흡사 우리의 일상에 디폴트로 탑재되어 있는 것 같은 이 문장은 텍스트 그대로 누군가의 식사를 묻는 뜻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챙기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해요. 레터를 쓰기 위해 도정공장을 살펴보면서 누군가를 위해서 쌀을 샀다는 후기를 여럿 보았어요. 아이의 이유식을 위해, 자신을 좀 더 챙기기 위해, 독립한 친구에게 그곳에서의 첫 밥은 꼭 이 쌀로 밥을 지어 먹으라면서요. 올해 언젠가 지인들에게 해둔 밥 한 번 먹자는 약속이 떠올라요. 그들에게 제 마음이 허사가 아니었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더 두터운 외투를 입기 전에 연락해 봐야겠어요.
🪨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초이입니다.
사람과 브랜드를 좋아해요. 매력적인 브랜드 뒤에는 늘 매력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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