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님, 살다 보면 소거법에 의해 무언가를 좋아하게 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돌멩이레터 31호 | 델픽
느슨하고 애매한
물결님, 살다 보면 소거법에 의해 무언가를 좋아하게 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글을 쓸 때 클래식을 듣는데요. 가사가 있는 가요나 팝송을 피하다 보니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어느새 은은하게 클래식을 좋아하고 듣는 사람이 되었어요. 비슷한 게 또 있어요. 바로 차(tea)가 그렇답니다. 커피와 우유를 못 마시는 탓에 그 둘이 들어간 음료를 제외하니 자연스럽게 차를 찾게 되더라고요. 여전히 카페 메뉴판에서 생소한 이름을 보면 '이건 무슨 차예요?' 물어야 할 때가 종종 있지만, 이젠 제법 어떤 맛이 좋고 어떤 맛은 별로인지 차 취향이란 게 생겼어요.
애호가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이런 느슨한 좋음들이 저는 좋아요. 오늘 소개해드릴 프리미엄 티 브랜드 '델픽(delphic)'도 어쩌면 물결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에게 클래식과 차가 그랬듯, 오늘 레터를 통해 물결님과 오랜 시간 느슨하게 함께할 취향을 찾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 초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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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균형을 찾는 곳
그리스 중부 코린트만에는 델포이(델피)라는 도시가 있어요. 여기 델포이에 그 유명한 아폴론 신전이 있고요. 사실 아폴론 신전은 이곳 외에도 그리스와 로마 곳곳에 세워졌었지만 그중 델포이의 신전이 가장 유명한 이유는 바로 '신탁' 때문이었어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신에게 조언을 얻기 위해 신전을 찾곤 했는데요, 그 신탁이 이루어진 곳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델포이랍니다.
델픽(delphic)은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차(tea) 브랜드예요. 고대 그리스인들이 델포이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고 답을 얻어갔듯이, 델픽의 차 한 잔을 통해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삶의 균형과 방향을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브랜드에 담아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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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픽
그래서인지 델픽을 둘러보면 고대 그리스가 떠오르는 디자인 요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어요. 한 손엔 월계수 가지를 다른 한 손엔 접시를 들고 있는 대표 일러스트는 델포이의 신탁을 받아 전하던 사제, 피티아를 표현한 일러스트예요. 입체감이 느껴지는 로고 속 알파벳 D는 꼭 신전 어딘가에 새겨졌던 글자 같기도 합니다. 그 외에 차 각각의 재료와 특징을 표현한 이미지도 손으로 그렸다기보단 판으로 찍어낸 판화 느낌이 물씬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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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픽
이렇게 고대 그리스 신화란 모티브를 브랜드 구석구석에 잘 녹여낸 데에는 유수진 대표님의 섬세함이 한몫했어요. 델픽을 브랜딩 할 때, 유수진 대표님은 순수 미술을 전공했던 경험을 살려 델픽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일관되게 전하는 데 집중했다고 해요. 무엇보다 이런 브랜딩을 통해 어렵고 고루한 차 문화 대신 물결님만의 미감과 취향을 만들어갈 수 있는 '델픽'이란 브랜드 자체가 드러나길 바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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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담아내다
물결님, 만약 물결님이 정말 좋아하고 또 잘 알고 있기도 한 어떤 분야를 주변 소중한 사람에게 소개한다고 상상해봐요. 우선 나를 통해 그 분야를 처음 접하게 되는 만큼 최대한 좋은 걸 엄선하겠죠. 반대로 입문자임을 고려해 자연스럽게 그 분야로 스며들 수 있도록 너무 어렵지 않은 걸 선택할 거예요. 델픽도 딱 그런 마음으로 차를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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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픽
1. 세계 최고 수준의 차
델픽은 두 가지 티 라인을 선보여요. 먼저 '시그니처 티'는 세계 각지에서 공수한 양질의 찻잎과 꽃, 과일, 허브 등을 조합한 블렌딩 티 라인이에요. 루이보스, 허브티, 밀키우롱 등 각각 짧은 이야기가 있는 6가지 블랜딩 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프리미엄 티' 라인은 7가지 단일다원의 차로 구성되어 있어요. 단일다원의 차란 한 차밭에서 같은 시기에 수확한 찻잎으로 만든 차를 뜻하는데요. 이런 차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생산하고 수확 기간이 짧아요. 그중에서도 향미가 뛰어난 차만을 선별하기 때문에 생산량도 매우 적고요. 대신 다른 차밭이나 지역의 찻잎이 섞이지 않아 해당 차밭과 지역의 고유한 성질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품질 또한 뛰어나죠.
시그니처 티, 프리미엄 티 모두 최상급의 신선한 원료를 찾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요. 체계적으로 찻잎의 품질을 검사하고 찻잎이 생산되는 차밭의 재배 방식과 제조 이력을 직접 꼼꼼히 파악해요. 이렇게 엄선된 원료는 오랜 기간 차를 연구한 국내 티 마스터와 해외 티 전문 연구진의 손에서 새로운 블랜딩 티로 재탄생합니다. 유수진 대표님도 티 마스터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어 제품 기획 단계부터 레시피 연구·개발 단계까지 직접 참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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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픽
2.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차
델픽은 어렵고 까다롭게 만든 차라고 해서 물결님도 어렵게 접근하길 바라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죠. 사실 최고 품질을 유지하려다 보면 원가가 비싸질 수밖에 없는데요. 이렇게 금액대가 높은 찻잎이라도 다른 재료와 적절히 블렌딩해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차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요. 특별한 도구 없이도 차를 즐길 수 있도록 천연 모슬린(평직으로 짠 무명천) 티백 제품도 만들고 있고요.
또 차에 관한 정보와 마시는 방법을 자세히 적은 설명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에요. 설명서를 살펴보면 우선 차를 우렸을 때 나오는 수색과 와인이나 향수처럼 차의 테이스팅 노트를 볼 수 있어요. 차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한눈에 차를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취향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죠. 차에서 느낄 수 있는 향과 맛을 마른 향, 과일 향, 꽃 향 등 5가지 향과 단맛, 쓴맛, 감칠맛 등 6가지 맛으로 나눠 그래프로 표현해두었거든요. 차를 마시는 방법도 세세하게 설명해요. 규칙처럼 꼭 지킬 필요는 없지만 설명서를 따라 방법을 조금씩 조절하다 보면 물의 양과 온도,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차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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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픽
이렇게 차분하고 정제된 그리고 섬세한 델픽의 분위기는 오프라인 공간에도 고스란히 묻어나요. 종로구 계동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한옥 사이에 자리 잡은 하얀 건물을 마주할 수 있는데요, 이곳이 바로 델픽 쇼룸이에요. 이 쇼룸은 원래 유수진 대표님이 어릴 적 20여 년간 살던 주택이었어요. 영국에서 돌아와 예술공간을 기획하던 중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살던 주택을 개조해 전시 공간인 '뮤지엄헤드'와 델픽 쇼룸을 만들게 된 거죠. 유수진 대표님은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예술과 차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문화와 사색을 즐길 수 있길 바랐어요.
델픽은 차를 만들고 준비하는 일, 차의 섬세한 맛과 향을 느끼는 일, 티웨어(tea ware, 다구)와 함께 찻자리의 여유를 즐기는 일 등 차를 마시는 모든 과정을 예술적 감각을 깨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공간 전체를 쇼룸과 티 카페로 사용하지 않고, 층고가 높고 개방감이 느껴지는 1층에 전시 공간을 들였어요. 이곳에서 동시대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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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픽
시원하고 탁 트인 느낌의 1층과 달리 볕이 잘 드는 2층 쇼룸은 목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따뜻한 인상을 줘요. 차를 접하기 시작하면 티웨어에도 조금씩 눈길이 가기 마련인데요. 차와 예술이 이어질 수 있는 또 다른 통로인 다채로운 티웨어도 여기 2층에 진열되어 있어요. 이 티웨어들은 모두 국내 공예작가들의 작품이에요. 카페에서 차를 주문하면 이 티웨어들을 직접 경험해 볼 수도 있습니다.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차와 함께 티웨어를 구매할 수 있는데요, 델픽은 이 과정도 예술로 촘촘히 채워 넣었어요. 물결님이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수집하며 취향을 알아갈 수 있도록 작품마다 작가 소개와 사용된 소재, 디자인 등을 이야기처럼 자세히 들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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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픽
차와 예술이 전혀 다른 분야인 듯하면서도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 공간에서는 저절로 느껴져요. 성격이 다른 1층과 2층이 어색하게 나뉘지 않도록 파사드(건물 전면 외벽)를 넓은 흰 면으로 감싼 과감한 입면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과감하게 비운 마당 덕분에 처음 마주하는 순간 시간이 잠시 멈춘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제품 디자인과 달리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고대 그리스 신화 요소를 찾아볼 수 없지만, 한옥 마을이라는 주변 환경에 고요히 녹아들면서도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델픽의 일관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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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신탁이 들려주는 분명한 목소리
고대 그리스에는 수많은 신탁소가 있었어요. 그런데 왜 델포이 신탁만이 그토록 유명했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마 신탁이 정확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실제론 정반대였어요. 델포이 신탁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애매한 신탁으로 유명했던 거예요.
델포이 신탁이 애매해진 데는 이런 이야기가 얽혀 있다고 해요. 아버지 제우스에게 미움을 산 아폴론은 아드메토스란 왕의 종으로 잠시 살게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 왕과 아폴론은 꽤 친해졌어요. 그래서 아폴론은 왕에게 선물로 왕 대신 죽을 사람을 구해오면 죽지 않고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왕 또한 기쁘게 이 선물을 받았고요. 하지만 막상 왕이 죽을 때가 되자 그를 대신해 죽어주겠다는 사람은 그의 아내 알케스티스뿐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선물로 준 셈이 돼버린 아폴론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이후 델포이로 돌아가 뜻이 애매한 신탁만을 내놓았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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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픽
사실 애매한 신탁에 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저는 왜인지 이 이야기에 마음이 가요. 미래를 알고 싶고, 내가 옳은 결정을 했다는 확신을 얻고 싶을 때 우리는 쉽게 누군가에게 기대게 되죠. 덜컥 타인의 말을 따르거나 믿어버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럴 때 답을 알려줄 목소리는 다름아닌 물결님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요. 그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일 수도, 때론 누군가와 대화하는 시간일 수도 있어요.
만약 지금 물결님이 어떤 갈림길에 서 있다면 차 한잔과 함께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때요? 그 시간이 애매할수록, 생각의 끈이 느슨할수록 목소리는 더 분명해질 거예요.
10월 6일 목요일,
돌멩이레터 32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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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omment ✏️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 말이 이젠 좀 진부한 것 같다가도 이따금 턱 밑을 콱 조여올 때가 있어요. 아마 대부분의 선택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죠. 선택이 저를 졸졸 따라다니며 괴롭힐 때면 예전엔 무조건 저에게만 집중하려고 했어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나에게 확실히 도움이 되는 쪽은 어느 쪽일까. 이런 질문으로 저를 다그치면서요. 요즘의 저는 그보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왜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면 '운명의 신이 날 외면했다'며 신을 탓한다잖아요. 물론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들어야 할 목소리는 물결님 목소리겠지만, 그 전에 여러 이야기를 느슨하게 풀어놓고 둘러보는 것도 분명 좋을 거예요. 산책하듯 여기저기 기웃대다 보면 확고한 취향이나 생각에 가려져 듣지 못했던 진짜 물결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초록입니다.
초록을 좋아해요. 공간과 텍스트를 좋아하고 이 둘의 힘을 믿으며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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