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저는 아직 인생 영화라고 부를만한 영화를 만나지는 못한 것 같아요. 어쩐지 더 감탄할 돌멩이레터 30호 | 프리즘오브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방법
아쉽게도 저는 아직 인생 영화라고 부를만한 영화를 만나지는 못한 것 같아요. 어쩐지 더 감탄할 영화가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아끼는 영화들을 말하라면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제게 좋은 영화는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 영화인데요. 모두 마지막 장면에서 울림과 떨림, 충격을 주었죠. 이 영화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데시벨이 높아지곤 합니다.
얼마 전에는 영화 모임에도 다녀왔어요. 영화를 보고 카피를 다시 붙여보는 모임이었죠.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 영화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심 부러웠던 기억이 나요. '인생'을 붙일만한 것을 발견한 기쁨은 어떤 것일까 하고요. 오늘의 돌멩이를 처음에 마주했을 때도 그런 감정이 들었어요. 오늘의 돌멩이. 누군가의 인생 영화를 다루는 영화잡지 '프리즘오브(PRISMOF)'입니다. 프리즘오브를 보며 무언가를 깊이 좋아하는 사람이 가진 반짝임을 느꼈어요. 물결님에게도 그 반짝임이 닿기를 바라며 레터 시작할게요.
- 초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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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오브
프리즘오브(PRISMOF)는 영화 관련 도서를 만드는 출판사 '프리즘 오브 프레스'에서 내놓는 계간 영화 잡지예요. 빛을 굴절시킬 때 쓰는 물체인 프리즘(prism)과 오브(of)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프리즘오브는 말 그대로 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습니다. 캐릭터, 음악, 촬영기법 등 영화 자체에 프리즘을 대보기도 하고요. 창작자, 비평가, 관객 등 영화를 보는 사람의 시선을 담기도 하죠. 2015년 창간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1호)'을 시작으로 가장 최근호인 '남매의 여름밤(23호)'과 2편의 특별호까지 총 25편의 프리즘오브를 발행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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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오브의 시작에는 당연하게도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있었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부모와 자란 프리즘오브 프레스의 유진선 대표는 자연스럽게 영화와 가까운 사람이 되었죠. 영화 '도그빌(2003)', '님포매니악(2014)' 등을 연출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이터널 선샤인(2005)', '무드인디고(2014)' 등을 연출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작품을 보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그 후 성인이 된 유진선 대표는 1년간 독립영화 상영회를 열어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 상영 전, 후 관객과 영화 관계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었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진선 대표는 이를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해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이 바로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 아까웠거든요. 이들의 다양한 '프리즘'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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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오브
프리즘오브의 원칙
프리즘오브는 크게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어요. 첫 번째 원칙은 한 호에 하나의 영화만 다루는 것입니다. 150페이지에 말이에요. 그 이유는 명확해요. 좋아하는 '영화'를 '더' 좋아하기 위함이죠. 꿈의 이미지를 환상적으로 연출하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2003)'은 유진선 대표가 좋아하는 영화에요. 물결님 중에서도 좋아하는 분 있을까요? 유진선 대표는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보고, 다시 보고, 또다시 봤죠. 그러다 고화질 블루레이 버전을 구매하고, OST 음반을 사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영화를 향한 마음을 드러내는 게 부족하다고 느낄 때, 유진선 대표는 물결님이 프리즘오브를 펼치기를 바라죠. 잠시 프리즘오브의 구성을 보여드릴게요. 크게 3개의 목차로 이루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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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오브,네이버영화
- Light of | 무엇이 영화를 만들었나. 영화의 기본적인 정보들을 소개해요. 감독이나 배우, 스토리라인, 수상 기록이나 흥행 기록, 영화의 신선함을 지수로 측정한 로튼 토마토 지수가 들어가기도 합니다.
- Prism of | 어떤 영화인가. 각 영화의 두드러지는 특징을 다루어요. 예를 들어 캐릭터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극이 전개되는 '파수꾼(9호)'은 각 캐릭터를 촬영하는 기법을, 음악이 중요한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10호)'호에서는 테마곡을 통해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방식을,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13호)'호에서는 영화의 미장센을 집중적으로 다루죠.
- Spectrum of | 영화 바깥의 시선. 스펙트럼에서는 프리즘을 통과한 다양한 시선과 다각적인 해석으로 영화를 다시 들여다봐요. '중경삼림(15호)'은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데요. 영화를 두고 오가던 기존의 담론을 또 다루기보다는, 지금의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를 가져와요. 이를 비교하면서 현재 영화가 갖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죠. 선과 악의 모호함이 섞인 영화 '다크 나이트(6호)'에서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경찰과 범죄심리학자의 시선을 담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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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영화
이렇게 영화의, 독자의, 사회의 프리즘을 통해 독자들은 더 폭넓게 영화를 경험할 수 있어요. PRISMOF의 뒤에는 무엇이든 올 수 있죠.
두 번째 원칙은 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인데요. 일단 '계속 이야기되는 영화'여야 해요. 다양한 프리즘을 빗대어 볼 수 있는지와 동일하죠. 그래서 프리즘오브의 리스트를 보면 관점에 따라, 시대에 따라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풍부한 영화들이 많아요. 동시에 주제 자체는 보편성을 지니기도 하고요.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 그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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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오브
독자의 프리즘 프리즘오브는 독자들이 영화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존재해요. 영화를 더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더 다양한 시선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돕죠. 그래서인지 프리즘오브 곳곳에는 독자들의 다양한 감상을 끌어내는 장치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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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오브
먼저, 질문을 던져요. 매 호를 제작할 때마다 고객 서베이를 받는데요. 해당 영화를 몇 번 봤는지와 같은 질문부터 극 중 캐릭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범죄자인 주인공에게 형을 내린다면 몇 년을 내릴지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질문을 던집니다. 또, 함께 보면 좋은 영화 리스트와 함께 나의 시선을 적어볼 수 있는 프리즘 카드, 지금은 바뀌었지만 나만의 표지를 만들 수 있어요. 표지에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공간을 마련하고 스티커를 같이 제공해요. 영화의 제목, 캐릭터, 주요 장면의 동작, 대사 등이 들어간 스티커예요. 독자들은 이 스티커를 가지고 자신만의 표지를 만들어요. 각자가 받은 영화의 인상에 따라, 감상의 초점에 따라 누군가는 소품을, 누군가는 대사를, 누군가는 제목만을 붙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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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오브
프리즘오브의 프리즘 프리즘오브가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래픽에 있어요. 독자들의 시선을 모으는 한편, 자신들의 시선도 잡지에 담아내죠. 프리즘오브는 일부 실사를 제외하고는 잡지에 들어가는 그래픽, 이미지를 협업을 통해 제작하거나 직접 제작해요. 그들이 영화를 이해한 바대로 표현하는 것이죠. 전체 컨셉, 컬러, 폰트, 일러스트. 전부 프리즘오브의 프리즘을 한 번 거치고 다시 표현된 것들이에요. 표지만 보더라도 영화의 전반적인 무드나 주제 의식을 엿볼 수 있는데요. 그중 인상 깊었던 호를 소개해드릴게요. 호러 영화 '미드소마(19호)'의 한정판 표지는 야광 효과를 주는 특수 소재를 적용했어요. 어두운 곳에서 기괴한 느낌을 표출하는 이 표지는 위로와 착취, 순리 이면의 잔인함 등 영화 전반에 흐르는 '양면적 면모'라는 주제 의식을 전달하죠. 주요 키워드가 '기억'인 이터널 선샤인(특별호)의 폰트는 가장자리를 무너지는 듯이 표현하여 기억과 상실을 표현했어요. 이를 통해 독자들은 책을 받아드는 그 순간부터 다시 한번 영화를 감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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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모인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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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오브
좋아하는 마음을 선명히
영화를 더 좋아하기 위해 시작한 프리즘오브의 여정은 7년째 지속되고 있어요. 매년 누군가의 인생 영화를 다루면서요. 때론 그 누군가를 직접 만나기도 합니다. 프리즘오브는 종종 '언더바'라 불리는 워크숍을 진행하는데요. 각자의 인생 영화로 프리즘오브의 목차를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이에요. 이 시간을 통해 나도 미처 모르고 있던, 인생 영화에 대한 나의 다양한 시선들을 정리해볼 수 있죠. '편집장의 빨간펜'이라는 이벤트도 있었어요.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피드백을 받아보는 프로그램이에요. 이 시간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그 마음을 조금 더 선명히 할 수 있어요. 프리즘오브는 이런 활동을 통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지속되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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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오브
문득 생각나는 호가 있는데요. 프리즘오브의 2개의 특별호 중 하나인 '불한당(특별호)'이에요. 이 특별호는 구독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얼핏 상업영화로 들리는 영화 '불한당(2017)'은 개봉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어요. 그러나 이 영화를 아끼는 팬덤이 다시 불씨를 붙였죠. 극장에서 영화 상영을 종료했음에도 자체 팬들을 동원해 관객 수 2만 명을 추가했어요. 프리즘오브에도 불한당 편을 내달라는 요청이 많이 있었어요. 자신들도 모르게 불한당에 스며든 프리즘오브는 이를 특별호로 제작하기로 합니다. 펀딩을 통해 진행되었는데요. 무려 1,057%라는 수치를 달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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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오브
글을 쓰기 위해 프리즘오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충만해졌거든요. 그 이유를 불한당 편 제작 이야기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프리즘오브에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가득해요. 좋아하는 영화를 더 좋아하기 위해 시작한 브랜드와 나의 인생 영화를 책으로 소장하려는 팬. 외면은 제작자와 소비자이지만 둘 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한 마음이라는 점에서, 이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나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9월 29일 목요일,
돌멩이레터 31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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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레터에서 가장 많이 얘기한 '좋아하다'를 사전에 검색해보니 이런 뜻이 있더라고요. 기쁘거나 즐거운 감정을 밖으로 나타내다. 보통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게 말이 막 튀어나온다고 하잖아요. '역시나 둘은 서로 동의어구나'라고 생각했죠. 좋아하다와 드러내다. 이 두 가지를 하는 프리즘오브를 보면서 좋아하는 무언가를 지속하고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그것을 드러내야 함을 깨달아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의 성질은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어딘가를 향해 있거든요. 그러니 물결님. 지금 좋아하는 게 있다면 더 많이 얘기해보는 거 어때요. 더 많이 얘기하고, 더 많이 드러내봐요.
🪨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초이입니다.
사람과 브랜드를 좋아해요. 매력적인 브랜드 뒤에는 늘 매력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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