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님은 하루의 시간을 보내면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있나요? 제 가방에는 돌멩이레터 27호 | 한아조
비움과 채움
물결님은 하루의 시간을 보내면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있나요? 제 가방에는 작은 파우치가 하나 있는데요. 매일 필요한 것을 넣어 다녀요. 영양제 4알과 립밤, 립스틱, 핸드크림 그리고 여름과 겨울, 두 계절에 바뀌는 고체 향수가 있죠. 무언가를 하다가 지쳤을 때, 그러다 갑자기 멍해질 때 고체 향수를 꺼내서 쓱쓱 바르곤 해요. 그러면 갑자기 정신이 들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지?' 하며 다시금 하고 있던 일에 집중해요. 기분 환기도 되고요. 말하자면 저를 깨우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의 돌멩이도 이를 위해 존재해요. 'PAUSE YOUR LIFE'를 모토로 사람들에게 휴식의 시간을 선물하죠. 수제 비누를 대표로, 휴식과 관련한 제품을 만드는 한아조(hanahzo)를 소개해드려요. 비누로 씻어냄과 동시에 영감을 채우는 시간이 되길 바라죠. 한아조가 어떻게 '비움과 채움'의 순간을 선사해왔는지 들려드릴게요.
- 초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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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조
한아조는 현재 대표인 조한아, 김상만 부부가 시작했어요. 패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조한아 대표, 조감독으로 영화를 만들던 김상만 대표가 각자의 회사를 퇴사해요. 조한아 대표는 좋아하던 일에 지쳐서, 김상만 대표는 좋아하는 일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워서였죠. 그 후 둘은 한동안 무언가를 찾기 위한 시간을 보내요. 지인과 함께 사업을 하기도 하고, 종일 영화를 보기도 하고, 공부를 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어느 날은 멍때리기도 하고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시간이 지나는 어느 날, 조한아 대표는 천연 비누를 만드는 공방을 다녀와요. 그리곤 결심하죠. 비누를 만들어야겠다고요. 직접 만든 비누로 씻는, 잠시의 시간이 크게 느껴졌어요. '씻는다' 는 필요에 의한 그 시간이, 역설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에서 멀어질 수 있는' 시간으로 다가왔거든요. 그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죠. 그러곤 바로 방산시장에서 에메랄드색 몰드와 3kg의 가성소다를, 서점에서 '천연 비누 만들기'책을 사 왔어요. 그게 한아조의 시작이었어요. 2평짜리 작업실에 'PAUSE YUOR LIFE'라는 슬로건을 내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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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조
" 나에 대해 돌아보고 생각했고,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떨 때 가장 행복한지에 대해 고민했죠.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쉬는 시간이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 저는 씻는 시간이 좋아요. 그래서 이 좋은 천연비누가 아름답고 의미 있는 제품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한아조의 모토인 'Pause Your Life'의 첫 아이템으로 천연비누를 선택하게 된 거예요."
- 조한아 대표.(정글 매거진,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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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조
아름다우며 기능하는 비누
한아조가 비누를 만들면서 고려하는 점은 크게 두 가지에요. 1) 충분히 예쁜가 2) 비누로서 기능하는가. 초반에는 비누의 디자인에 집중했어요. 당시만 해도 수제 비누는 장미나 티트리 등 원료를 넣은 기본 비누뿐이었거든요. 세정 기능도 중요하지만 쓰고 싶게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조한아 대표가 직접 '쉼(pause)'의 순간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비누를 만들었어요. 달콤한 디저트를 연상시키는 케이크 모양의 컬렉션은 각각 산의 정상에 바라본 풍경(구름 아래), 바다의 풍경(바다 수영) 등을 담고 있어요. 또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봄을 맞이하였을 때의 감정이 느껴지는 셋둘한아. 보는 것 만으로도 감정이 환기돼요. 지금은 판매하진 않지만 고객들에게 한아조 이미지를 각인시킨 제품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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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조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 즈음, 조한아 대표에게 한 가지 질문이 생겼어요 '너무 디자인에만 집중하고 있는게 아닐까. 비누 자체를 더 많은 사람이 쓸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라는 고민이었어요. 디자인적으로 탁월하지만, 사용성에서 불편한 점들이 있었죠. 이 고민에서 나온 제품이 온리원 시리즈에요. 10가지 종류로 구성된 이 시리즈 비누는 각 한 가지의 대표 성분만 넣어 원재료의 기능을 강조했어요. 정화작용이 뛰어난 숯, 황산화 작용이 뛰어난 팥, 풍부한 보습감을 지닌 살구 등 피부를 생각하는 마음을 듬뿍 담았죠. 실제로 한아조의 후기를 보면 디자인만큼, 제품력에 대한 코멘트가 정말 많음을 알 수 있어요.
그렇다고 미적인 부분을 포기한 건 아니에요. 장식을 걷어내는 대신 재료가 가진 컬러를 살리고 단순한 조형미를 강조했어요. 오히려 단순해서 더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요. 보통 한아조의 고객들은 여러 비누를 함께 쓰곤 하는데요. 비누가 점차 작아지면 비누끼리 뭉쳐서 쓰거든요.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문양과 모양, 색은 또 다른 영감이 되어주어요. 또 비누 사용 경험을 높이기 위한 제품도 만들었어요. 거품을 내고 비누를 오래 쓸 수 있도록 돕는 비누망, 친환경 소재인 소창으로 만든 다회용 화장 솜, 세안 타올이 그것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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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조
공예가들 | 크래프트맨십(craftmanship)
한 편 탁월한 비누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존재가 있어요. 한아조의 작업실에는 "우리는 정말이지 위대한 작업자들입니다" 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데요. 바로 직원들이에요. 모든 제품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한아조에서는 누구보다 이 사람들의 손이 중요해요. 그래서인지 한아조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크래프트맨십(craftmanship)'이예요. 비누 만들기가 이들에게는 곧 공예품을 만드는 일인 거죠. 모든 직원이 몰드에 비누를 붓고, 꺼내고, 말리고, 자르고, 포장하여 판매하는 전 과정에 함께해요. 때로는 자신이 만든 비누를 직접 고객에게 설명하고 팔기도 하죠. 그러니 결국, 이 크래프트맨십은 한아조의 자부심이자 그들의 또 다른 이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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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조
영감을 주는 존재로서의 한아조 휴식의 시간을 선사하는 한아조가 결국, 물결님에게 주고 싶은 건 영감의 시간이에요. 손으로 정성을 들인 패키지, 비누 저마다의 색들의 조화, 사용하면서 달라지는 비누의 모양. 한아조의 제품을 받아서 사용하는 일련의 과정이 영감이 되기를 바라죠. 2018년, 서촌의 베어카페에서 진행했던 '낫 포 세일 포 세일(Not for sale for sale)'이라는 전시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고 싶어요. 한아조는 이 전시에 대해 이렇게 얘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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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조
비누는 세안제이다. 하지만 한아조의 비누는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의 오브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세안제 = 오브제? 모든 질문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번 리미티드 에디션은 이른바
‘공예품과 제품, 제품과 작품의 경계'에 대한 천착의 과정 중 하나이다.
- 한아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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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조
이 전시는 2.5m의 커다란 몰드를 설치하고 그 위에 여러 색상의 비누를 겹겹이 쌓았어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추상화 같죠. 손님들은 이 몰드 중 원하는 곳에 깃발을 꽂아요. 그리곤 두 달 뒤에 자신이 깃발을 꽂은 부분의 비누를 집으로 받아보는 전시였어요. 이 비누는, 여러 색의 비누를 규칙 없이 쌓았고 각자가 원하는 곳에 깃발을 꽂았기에 전 세계에 오로지 하나만 존재해요. 한정판 비누인 셈이죠. 한아조는 이 비누들을 '퍼포먼스 솝(Performance soap)'으로 이름 붙여 홈페이지에 전시해두었어요. 이 비누는 두 가지의 활용법이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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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use | cleanser : 세정제
Not for use | objet : 오브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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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한아조가 비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담겨 있어요. 비누를 오브제로 그냥 두고 감상하는 것도, 쓰면서 변화하는 모양과 색깔을 목도하는 것도 모두 퍼포먼스의 연장이에요. 그러니 이 비누는 '세정이라는 쓸모를 가진 비누'임과 동시에 '영감을 주는 개체'인 것이죠. 그렇게 한아조는 사람들에게 휴식의 순간과 영감을 채우는 순간을 함께 주고자 합니다.
콜라보레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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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조
한 편으로는 영감을 주기 위해 다른 이들과 협업해요. 일상의 오브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인형 브랜드 '뚜까따(TUKATA)'와 보자기를 만들기도 하고, 워케이션 문화를 만들어가는 코사이어티 빌리지와 제주를 느낄 수 있는 스테이 키트를,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사라져버린 문화재를 비누로 복원해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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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제대로 감각하는 것
한아조는 이제 욕실에서 나와서 침실로 향해요.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Pause(멈춤)의 순간에 한아조가 함께하길 바라죠. 씻는 시간 다음으로, 하루 중 모든 것을 멈추는 순간인 '잠자는 시간'을 들여다봤어요. 2019년 여름 잠옷을 시작으로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산책, 자이트(Zeit)라는 홈웨어를 선보였는데요. 여기에는 공통으로 '시간'이라는 키워드가 관통하고 있어요. 그 중 자이트의 상품 소개 문구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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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조
자이트는 시간의 상대성을 생각하며 만들어졌습니다. (...) 시간을 감각하는 순간, 우리는 시간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 한아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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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조
가끔 그런 생각 해요. 내가 내 시간에 압도당하고 있다는 생각이요. 대게 계획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함께 오거나, 많은 것들이 계획에서 틀어질 때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는 때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요. 꽤 고통스러운 감정이에요. 제가 이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에요. 무리를 해서라도 밀린 모든 일을 정리해버리거나, 우선순위가 높은 일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다른 건 차단하고요. 그러고 나면 다시금 시간이 흐르는 것이 보여요. 언제 무엇을 해야 할지 감각이 돌아오죠.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도록, 잠시 멈추는 것. 그리고 그렇게 멈출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한아조가 생각하는 쉼(pause)이며,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일 거예요.
9월 8일 목요일,
돌멩이레터 28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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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면접 전 한 잔의 커피와 응원, 입사 4년 차에 떠나는 리프레시 여행에 '근속연수 늘리기 프로젝트'라며 보내온 여행용 수납 가방 세트. 어쩜 이렇게도 나의 상황과 필요함에 적절함을 채워 넣는지. 그 관찰력과 공감력, 배려심에 놀라곤 합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비어있는 것을 찾아 물건으로 건네는 행위가 '선물'의 정의같이 느껴져요. 한아조를 살펴보면서 이 '선물'이라는 단어가 내내 떠올랐어요. 어쩐지 제게 선물을 하나 하고 싶어져요. '수고한 나 자신 받아라.' 하고요. 지금의 제게 비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것을 채워 넣고 싶어졌어요. 대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금요일인 내일. 업무를 마치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아무렇게나 앉아 쉬다 가야겠어요. 물결님은 어떤가요. 이번 주 무엇으로 비우고, 무엇으로 채웠나요?
🪨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초이입니다.
사람과 브랜드를 좋아해요. 매력적인 브랜드 뒤에는 늘 매력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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