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님, 손글씨 잘 쓰세요? 저는 악필인데다가 손에 힘도 금방 풀려서 손글씨보다 타이핑을 더 좋아하는 편 물결님, 손글씨 잘 쓰세요? 저는 악필인데다가 손에 힘도 금방 풀려서 손글씨보다 타이핑을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일기 쓰기도 필사도 모두 타이핑으로 하는데요. 그런데도 꼭 손으로 글씨를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어떤 노랫말이 화살처럼 날아와 마음에 박힐 때, 책에서 강렬한 문장을 만났을 때, 혹은 문득 드는 생각을 기록해 두고 싶을 때요. 제 노트에는 그래서 맥락 없는 문장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요. 이따금 노트를 펼치면 전에 썼던 문장들이 '어 왔니?' 하며 들쭉날쭉 인사하는 기분이에요. 그게 조금 웃겨서 슬쩍 웃기도 하고, 거기에 맥락 없는 문장을 한 줄 더 추가하는 게 저의 소소한 행복이랍니다.
물결님은 어떤 기록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어떤 방식으로든 물결님도 물결님 나름의 기록을 하며 살아갈 텐데요. 오늘 던져드릴 돌멩이는 그런 물결님의 기록 여정을 함께할 문구 브랜드 '프렐류드(prelude)'입니다. 자유로운 곡선 가득한 디자인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손과 마음이 하는 일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브랜드예요. 물결님에게도 그 매력과 힘이 잘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 참, 돌멩이레터는 지금 물결님의 비롯한 물결님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족도 조사를 하고 있어요. 아직 참여하지 않았다면 레터 마지막 이미지를 클릭해 목소리를 남겨주세요. 돌멩이레터의 물결이라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선물도 있으니 놓치지 마시고요!
- 초록 드림 |
브랜드와 꼭 닮은 존재
'브랜드'라는 말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그 유래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찾을 수 있는데요.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문맹률이 매우 높았다고 해요. 그래서 상점 주인들이 자신의 물건에 차별을 두기 위해 상점 이름 대신 팔고 있는 물건과 그 특징을 나타내는 특정 그림이나 표시를 상점 앞에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중세기에 접어들면서 기술자나 공예 작가들이 타인의 작품과 자기 작품을 차별화하고 보증하는 수단으로 특별한 표시를 사용하기 시작했고요.
브랜드(brand)의 어원은 노르웨이 고어 brandr로, 이 단어는 '불에 달구어 지진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옛날 옛적 자신이 기르는 가축을 구분하고 표시하기 위해 화인(火印)을 새기는 것으로부터 유래된 단어인 거죠. 다행히 이런 잔인한 행위는 사라졌지만, 자신의 소유를 나타내고 타인과 차별을 둔다는 의미는 이어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도 점점 더 확장됐어요. 현대에 들어서는 단순히 이름, 심볼, 슬로건 등의 결합체라는 뜻을 넘어 기업이나 제품 및 서비스의 정체성과 차별성,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브랜드'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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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브랜드의 유래를 왜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했느냐면요, 브랜드와 꼭 닮은 존재가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에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 자신만의 시야와 사고, 소통 방식을 만들어 나가고 그렇게 모든 역사를 통틀어 딱 하나뿐인 '정체성'을 가지는 존재. 눈치채셨나요, 물결님? 맞아요. 바로 '사람'입니다. 브랜드에 관해 이야기하면 할수록 브랜드와 사람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때론 사람이 브랜드 자체가 되기도 하고요.
앞서 말했듯이 이제 브랜드는 아주 넓은 의미를 가지는데요. '프렐류드(prelude)'란 브랜드도 마찬가지였어요. 물결님에게 딱 한 마디로 '이곳은 이런 브랜드입니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복합성을 가지고 있었죠. 고민 끝에 억지로 이 브랜드를 정의하는 대신 프렐류드를 만든 사람, 정다은 대표님 이야기를 찬찬히 해볼까 해요. 정다은이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프렐류드란 브랜드에 고스란히 녹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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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를 향해 한 걸음씩
정다은 대표님은 어렸을 때부터 동네 문방구를 좋아하던 학생이었어요.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편지지만 200장 가까이 모으기도 했대요. 공부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노트필기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 수업 시간마다 열을 올리곤 했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는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기록의 재미에 푹 빠졌어요. 교환일기, 비밀일기, 롤링 페이퍼… 이런 것들이 학교생활에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가 되어주었죠. 학년마다 미화부를, 학급회의 시간엔 서기를 꼭 맡아야 직성이 풀렸던 학생이 바로 정다은 대표님이었어요. |
그렇게 무언가를 적고 꾸미고 그리는 일을 좋아했던 정다은 대표님은 자연스럽게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입시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대학교도 디자인 전공으로 가게 되었어요. 대학 입학 후 곧바로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요. 그곳에서 종이의 결을 알아보고 종이와 인쇄기기를 다루는 법을 배웠어요. 물론, 이미 제본된 책의 표지를 교체하는 방법 같은 흥미롭고 골치 아픈 일도 포함해서요. 정다은 대표님의 두 번쨰 일터는 문구와 한 걸음 더 가까워진 프랜차이즈 팬시점이었어요. 그 이후로는 미술학원 강사, 벽화 아르바이트부터 보안요원, 레스토랑 서빙, 안내데스크, 물리치료 보조, 돌잔치 파트타이머까지 문구와 전혀 상관없는 일도 다양하게 했어요.
대학생이 된 정다은 대표님은 조금 더 문구생활에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학교 축제 때마다 친구들과 굿즈를 만들어 판매했어요. 즉각적으로 좋은 반응이 돌아왔고, 그 즐거움에 다른 대학 축제에도 참석해 손수 만든 굿즈를 판매하거나 록 페스티벌에 마켓을 열기도 했어요. 또 문구 브랜드마다 메일을 보내 어떻게 해야 문구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지, 지금부터 뭘 준비하면 되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도 했는데요. 감사하게도 열 군데에 메일을 보내면 여덟 군데에서는 상세한 답장을 보내주셨다고 해요. 그렇게 졸업 후 들어가고 싶었던 문구 에이전시에서 문구 디자이너로 일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확히 입사 7일째, 그곳을 나왔어요. 하루에 20시간 넘게 일하며 눈을 감아도 모니터가 둥둥 떠다니고 잠도 생활도 정상적으로 영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되고 싶던 디자이너였지만,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면 디자이너가 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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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내려놓고 이제 무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을 때, 정다은 대표님과 같은 상황이었던 친구로부터 대학생 때 함께 만들던 굿즈를 더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교회 한편에 2평 남짓한 공간을 빌려 동네에서 주워 온 가구로 사무실을 꾸몄죠. 이게 프렐류드의 시작이었어요. 2015년, 단돈 30만 원과 함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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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하는 일
물결님, 이 모든 히스토리가 손으로 기록되어 있다면 믿어지나요? 사실 저는 정다은 대표님을 잘 알고 있던 것도, 뵌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이렇게 대표님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건, 프렐류드를 만들고 이어온 지난 시간을 모두 기록해 프렐류드 인스타그램에 공유해주신 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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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 브랜드라는 특성상 워낙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다루고 있기 때문에 프렐류드 제품의 특징을 딱 하나로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정다은 대표님의 이야기를 쭉 읽으며 저는 조심스럽게 프렐류드의 정체성은 '손'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어요. 손이 하는 일은 그래요. 일정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죠. 동그라미 100개를 그리면 100개 모두 다른 동그라미를 그리는 도구가 바로 손이에요.
프렐류드가 만드는 문구들을 보면 유독 곡선이 많이 보여요. 그것도 정확한 함수로 그래프에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은 곡선이 아니라 손이 그린 듯한 곡선이요. 보고 있으면 각각의 선이 가지는 고유함이 밝은 색감과 만나 유쾌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기분이 들어요. 통통 살아서 움직이는 디자인이 칼로 재단된 듯한 물건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에게 묘한 다정함으로 다가옵니다. 손으로 그린 선 하나, 도형 하나 모두 제각각인 것처럼 조금씩 다른 우리의 생활과 삶, 모습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해요. |
프렐류드의 대표 상품인 '피키트 다이어리(P-kit Diary)'에도 이런 정서가 녹아있어요. 피키트 다이어리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림일기, 여행일지, 강의노트, 레시피북, 캐시북 등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답니다. 먼슬리, 위클리부터 클리어 수납팩, 지퍼백까지 총 9가지 내지노트와 튼튼한 PVC 소재로 만든 다양한 색상의 커버를 직접 골라 물결님의 노트를 만들 수 있어요. 어떤 분은 이 다이어리에 클리어 수납팩만 채워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기록하고, 방안형 내지노트만 채워 도면노트로 활용하는 디자이너도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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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하는 또 다른 일이 있는데요. 바로 '검수'입니다. 정다은 대표님이 프렐류드를 운영하며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이거… 다 사람이 하는 거였어?"라는 말이라고 해요. 그만큼 문구 사업에는 인건비를 산정할 수 없는 자잘한 업무가 넘쳐나요. 일반적으로 적게는 20%, 많게는 60%까지 결점이 있는 문구가 생산되는데요. 도저히 쓸 수 없는 불량품도 있지만, 조금만 손길을 더하면 큰 문제 없이 주인을 찾아갈 수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정다은 대표님은 오늘도 문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흑심이 묻은 연필을 한 자루 한 자루 지우개로 손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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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하는 기록엔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물결님도 손으로 일기를 써봤다면 잘 알 거예요. 쉽게 지우고 편집할 수 있는 타이핑과 달리, 손이 쓰는 글을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기 십상이라는 걸요. 때론 아무 말이 되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래서 가장 솔직해지기도 하죠.
"마음이 습하고 눅눅할 때, 글로써 표현하면 햇볕에 잘 마르는 기분이 들어요. 건강한 기분이요."
- 정다은 대표(ROTARY, 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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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물결님께는 프렐류드 이야기를 이렇게 함축해서 들려드렸지만, 지금의 프렐류드가 있기까지 정다은 대표님이 찍어 온 점들은 셀 수 없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다은 대표님이 손으로 남긴 기록을 따라 읽다 보면 하나의 마음이 보여요. 그 마음이 하는 일은 아마 이런 것들이겠죠. 매번 쓰러질 듯 힘들어도 더 많은 분에게 문구의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팝업스토어를 여는 일, 누구도 시킨 적 없지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매달 월간굿즈를 만들어 무료로 증정하거나 아이패드 먼슬리 노트를 만들어 공유하는 일, 주기적으로 진로특강을 다니며 손수 포장한 문구키트를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일 같은 것들이요.
결국 문구를 향한 '사랑'이 이리저리 헤맸던 정다은 대표님을 지금의 프렐류드로 이끌었어요. 그리고 계속 나아가게 하죠. 프렐류드는 앞으로 또 어떤 길을 걷게 될까요? 모르긴 몰라도 그 길이 프렐류드다운 길일 거라는 건 분명해요. 헤매고 헤매다 도착한 것 같아 보여도 사실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존재를 부지런히 따라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정다은 대표님이 그 마음을 지키는 한 프렐류드는 흔들리지 않고 가야 할 길을 갈 거예요. 오래 사랑받으면서요.
프렐류드(prelude)는 음악에서 도입부 역할을 하는 '서곡'을 뜻한다고 해요. 기분 좋은 시작을 꿈꾸며 지은 이 이름처럼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프렐류드가 걸어갈 수 있길 응원하고 싶어요.
8월 4일 목요일,
돌멩이레터 25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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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님의 꿈은 어떤 변천사를 겪어왔나요? 제가 기억하는 저의 첫 번째 꿈은 의상 디자이너였어요. 그리고 한동안은 별다른 꿈 없이 공부만 했던 것 같고요. 손이 야무져서 집안 크고 작은 것들을 고치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별안간 외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어요. 고등학생이 되어선 물리가 재밌어서 막연히 기계공학과 같은 곳에 진학하겠구나 생각했는데 또 고3이 되니 갑자기 건축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건축 일을 했어요. 하지만 밤낮없는 건축 일에 체력적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1년 반 만에 그만뒀어요. 부랴부랴 다른 일을 찾았죠. 한동안 여기저기 애매한 가장자리를 맴돌다가, 과감히 모든 걸 멈추고 '내 마음이 하고 싶은 일은 뭘까’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랬더니 도서관에 있는 제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장소는 달랐지만 시간 나면 항상 가서 앉아있던 곳이 도서관이었어요. 그제야 아, 어쩌면 나는 글을 오래 좋아하고 있었구나 싶었죠. 그렇게 돌고 돌아 지금 이렇게 글을 써요.
가끔 평생 한길만 걸어온 운동선수나 뮤지션을 보면, 그 확실한 재능과 관심사가 부럽기도 해요. 그런 날은 애매한 재능으로 여기저기 기웃대며 걸어온 제가 괜히 미워지는 날이죠. 하지만 오늘 레터를 쓰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그때그때 사랑했던 것들이 나를 이끌어 왔구나.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큰 사랑이 지금의 에디터 초록을 만들었구나. 물결님, 혹시 지금 걷는 길이 불안하다면 그냥 마음을 믿어보면 어떨까요. 장담하는데, 사랑이 이끄는 길은 틀리는 일이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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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초록입니다.
공간과 종이, 텍스트를 좋아하고 셋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책방을 사랑해요. 글과 공간에 관한 브랜드를 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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