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칭찬이 있어요. '그냥 좋아'. 저를 두고 하는 말이든, 제가 내놓은 결과물을 향하든지요. 돌멩이레터 20호 | 월악산 유스호스텔
찰나에 느끼는 밀도
좋아하는 칭찬이 있어요. '그냥 좋아'. 저를 두고 하는 말이든, 제가 내놓은 결과물을 향하든지요. '그냥'이라는 단어를 별다른 이유가 없는, 다소 성의 없는 뜻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럴 때 있지 않나요? 너무 많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를 고르지 못해 그냥이라고 말할 때요. 오늘의 돌멩이가 그랬어요. 처음 마주했을 때, 그냥 좋았거든요. 바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랬답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보니 알겠더라고요. '그냥 좋은'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 뒤로 수많은 이유를 켜켜이 쌓아왔다는 것을요. '밀도가 높을 때라야 그냥 좋을 수 있다'고 깨달았죠. 오늘의 돌멩이는 충북 제천에 위치한 '월악산 유스호스텔(WORAKSAN YOUTH HOSTEL)'이에요. 운무가 떠 있는 월악산 자락, 충주호가 보이는 자연의 한 가운데 있죠. 그곳에서 어떤 좋은 이유들을 찾아왔는지 들려드릴게요.
- 초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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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유스호스텔
월악산 유스호스텔.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궁금했어요. 유스호스텔. 물결님도 같은 추억 있는지 모르겠어요. 학창 시절 극기 훈련으로 갔던, 저녁이면 불 앞에 모여앉아 캠프파이어를 하고, 돌아올 때면 어느새 교관 선생들님과의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던 장소요. 유스호스텔은 아이들에게 교실을 벗어난 체육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어요. 그래서인지 유달리 자연 속에 있는 경우가 많죠. 월악산 유스호스텔도 마찬가지입니다. 산과 호수, 그리고 넓은 들판을 느낄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요. 1999년에 개관해 22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오던 유스호스텔을 리노베이션하여 지난해 개장한 것이 월악산 유스호스텔의 또 다른 시작입니다.
'숙박'보다는 '숙소'로
시작이 유스호스텔이어서일까요. 월악산 유스호스텔은 호젓한 풍경을 지니고 있는 한편, 어느 곳보다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함께 월악산을 트래킹하는 데이 하이커스(Day Hikers)를 진행하고요. 국립공원공단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야생화 탐방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어요. 캠핑을 즐겨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캐주얼 캠퍼스 사이트(Casual Campers Site)도 있어요. 봄이면 너른 들판을 느낄 수 있는 '피크닉 바스켓', 여름이면 월악산과 충주호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수영장'을 운영하고요. 고요한 밤을 느낄 수 있는 '불멍세트'도 있죠. 월악산 유스호스텔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여행이라는 짧은 여정에서 자신이 머무는 장소를 충분히 인식하고 돌보는 플레이스풀니스(placefulness)를 지향하기 때문이에요.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자연을 흠뻑 느껴보기를 바라죠.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 소복이 쌓이는 눈과 산세를 휘감는 운무. 이것들을 '마음껏 탐험하고 돌아와 편안한 숙소에서 온전히 휴식을 취하는 것'. 이것이 월악산 유스호스텔이 생각하는 이곳에서의 여행입니다.
" 같은 객실에 머물더라도 산의 정상을 눈에 담고 온 사람과 잔잔한 호수의 물결을 느끼고 온
사람의 하루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월악산 유스호스텔이 단순한 숙박시설로 남기보다는
여행의 일부분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많은 분이 자연 속에서 땀 흘리고 경험하고,
느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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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 고민으로부터
월악산 유스호스텔을 둘러보며 밀도가 높은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지만 몇 단어들이 자연스레 떠올랐거든요. 어드벤처, 캠핑, 정원, 숙소. 이건 단지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통해서만은 아니에요. 이들의 충분한 고민에서 오죠.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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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라이브러리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뉜 유리문을 통해 로비에 들어서면 산 모양을 한 조형물(Bernard Venet, '8 Acute Unequal Angles, 2020)이 우리를 반겨요. 그 옆에는 작은 라이브러리가 있는데요. 함께 간 미솜 디자이너와 살펴보다가 둘 다 '아!'를 외쳤어요. 진열된 책들이 모두 월악산 유스호스텔과 연결되었거든요. '자연과 함께하는 건축', 'Gardening for All'. 자연스레 월악산 유스호스텔 팀이 이러한 것들에서 영감받아 공간을 꾸려왔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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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적 리노베이션
22년이나 된 건물이기에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꿨을 것이라고 짐작했거든요. 월악산 유스호스텔은 왜 이렇게 하는지에 대해 더 집중해요. 더 좋게 만드는 것보다요. 현재 월악산 유스호스텔에는 9개의 객실이 있는데요. 그중 두 곳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요.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 고민한 끝에 한 곳은 오두막집을 체험해볼 수 있는 캐빈 하우스를, 한 곳은 반려동물의 출입이 가능한 객실을 만들었어요. 두 곳 모두 쉽게 찾을 수 없는 유형의 숙소이죠. 한 편, 한 층의 전 객실은 오픈하지 않고 있어요. 좀 더 확실한, 월악산 유스호스텔다운 기획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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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크루 체험단
월악산 유스호스텔은 매 시즌마다 '월악산 크루'를 운영합니다. 크루는 월악산 유스호스텔의 신규 프로그램을 경험해보고 피드백을 주는데요. 고객에게 어떠한 방법과 표현방식으로 자연을 체험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죠. 이날은 오로지 크루들을 위해서만 숙소를 오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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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단은 월악산 유스호스탤이 추구하는 가치를 향하여 한 걸음 더 다가가는 활동입니다.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취미로 갖고 계신 체험단 분들의 피드백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을 확인하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다양한 아웃도어 액티비티에 대한 이해도 또한 높였습니다. 추후에는 개인이나 하나의 팀을 섭외하여 보다 심도 깊게 접근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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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님, 그런 아쉬움 느낀 적 있지 않나요? 잘 쌓아오다가 한순간에 삐끗하는 걸 목격하는 순간이요. 특히 애정하던 대상이라면 더욱 그렇죠. 월악산 유스호스텔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요. 월악산 유스호스텔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 방식은 단호하면서도 섬세해요. 홈페이지에서 예약 버튼을 누르면 가장 먼저 숙소 이용 규칙이 안내돼요. 총 16가지 항목으로 매우 상세하죠. 주변의 둘러볼 곳을 소개하면서도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배려해달라고 말하고요. 숙소 곳곳에서는 반려견 동반 시 주의사항을 전하는 팻말도 볼 수 있어요. 한편 이용객에게만 이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함께 노력하죠. 반려견 동반 객실에는 깜빡하고 잊고 온 이들을 위해 입마개, 리드줄, 배변 봉투, 기저귀 등이 구비되어 있고요. 가족 단위의 이용객이 많은 캐빈 하우스에는 12개월 이하 아기 전용 침대도 준비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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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유스호스텔
월악산 유스호스텔의 '선'은 자연으로도 향해요. 자신들을 '환경보존단체' 라고 부르죠. '지속가능성'은 월악산 유스호스텔 활동의 기준점으로 작용해요. 자연을 품고 있는 월악산 유스호스텔에게 '자연의 지속'이 곧 자신들의 지속과 연결되기 때문이에요. 어메니티로 고체 형태의 샴푸와 바디용품, 무라벨 생수가 준비되어 있고요. 함께 제공하는 차는 폴리 티백이 아닌 원물 형태의 잎차로 준비되어 있어요. 대신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다구를 함께 비치했죠. 또 버려지는 원단으로 유니폼을 제작하고요. 캐빈 하우스 오픈을 기념하면서는 월악산의 깃대종인 산양의 보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쓰임을 다한 에코백을 재활용해 와인백을 만들었어요. pvc 소재의 와인 칠링백 대신에요. 조식 제공 시에 사용되는 테이블웨어, 피크닉 용품들도 하나씩 친환경 제품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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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유스호스텔
" 월악산 유스호스텔에게 '친환경'은 필수불가결한 가치이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는
지속 가능한'이라는 관형어로 구체화하여 모든 콘텐츠를 기획하기 전 하나의 체크포인트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저희의 이용규칙들은 고객에게 일종의 선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혼자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에 타인을 배려해야 하고, 이 공간이 위치한 지역이
나에게는 하루의 숙박 장소라면 근처에 거주하는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꾸준하게 월악산 유스호스텔은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선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다시 월악산 유스호스텔이 추구하는 '플레이스풀니스(placefulness)'로 향해요. 내가 머무르는 곳을 충분히 의식하고 돌볼 때, 여행은 계속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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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돌아오고 나서야 시작되는 것 어릴 때, 명절이면 큰아버지 댁을 방문했어요. 마을 초입에 마을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는 동네였죠. 명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점점 느려지는 바깥 풍경에 이윽고 차가 가다 서기를 반복하면 잠에 들곤 했어요. 그리고 눈을 떠보면 어느새 창밖의 풍경이 바뀌어 있죠. 그럴 때면 꼭 잠시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 같았어요. 제가 기억하는 여행에 대한 최초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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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인가 들었어요. 여행은 끝나고 나서 시작된다고요. 머무를 때는 모르다가, 돌아와 사진을 들춰볼 때. 그제야 ‘아, 내가 이곳을 다녀왔구나’라고 인지하곤 해요. 월악산 유스호스텔에도 그런 장치가 하나 있어요. 3층 가장 끝 객실에 들어서면 귀여운 공간이 펼쳐져요. 월악산 크루의 유니폼과 패치가 부착된 에코백, 어드벤처를 즐길 때 입을 수 있는 바람막이, 호텔 객실을 담은 키링, 객실에서 만난 차와 커피. 월악산 유스호스텔이 직접 만들거나 고른 제품을 만날 수 있는 샵이에요. 월악산 유스호스텔은 왜 이런 공간을 마련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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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유스호스텔
" 때때로 사람들은 브랜드를 통해 위로와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달콤한 디저트, 오래전부터 사고 싶었던 가방,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 티켓 등 그 형태는 다르지만 지치고 힘든 일상을 벗어나거나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브랜드 또는 브랜드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일부 제공해 준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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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유스호스텔
생각해보면요. 산 한가운데 위치한 이곳을 방문하는 건 꽤 수고로운 일이에요. 원하는 날짜에 예약을 하고, 먼 곳까지 와야하죠. 하지만 이런 수고로움을 자처하고서라도 여행이 끝난 후 월악산 유스호스텔을 떠올렸을 때 그날 찍은 사진과 물놀이 하며 입은 수영복을 바라보면서, 조금이나마 지치고 힘든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위안을 얻는 것. 이것이 물결님께 월악산 유스호스텔이 존재하고자 하는 이유예요.
7월 7일 목요일,
돌멩이레터 21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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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omment ✏️
일하다 보면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요. 분명히 어려운 일인데 아무렇지 않게 쉽게 해내는 사람이요. 놀라운 마음이 듦과 동시에 저렇게 되기까지 얼 만큼 고군분투 해 왔을지 그려봐요. 어려운 일을 쉬운 일로 바꿔내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을까 하고요. 월악산 유스호스텔을 다녀와서 '밀도'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게 돼요. 나는 어느 정도의 밀도로 일하고 있나, 어느 정도의 밀도로 생활하고 있나. 바쁘게 매일을 보내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쌓는지 모르는 채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월악산 유스호스텔의 플레이스풀니스 개념이 참 와닿았는데요. 일상의 우리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내가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재를 충분히 인식하고 돌보는 것. 그게 매일의 밀도를 높이는 시작점이 아닐까 라는 생각 들었어요. 물결님의 오늘은 어때요. 오늘의 밀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초이입니다.
사람과 브랜드를 좋아해요. 매력적인 브랜드 뒤에는 늘 매력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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