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레터가 사람을 조망합니다. 멋을 쟁이는 사람, 이른바 '멋쟁이' 시리즈예요. 지금까지 돌멩이레터가 철 돌멩이레터가 사람을 조망합니다. 멋을 쟁이는 사람, 이른바 '멋쟁이' 시리즈예요. 지금까지 돌멩이레터가 철학을 품은 단단한 브랜드를 발굴해 물결님께 알린 것처럼, 비정기적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묵묵히 나아가는 멋쟁이를 소개합니다. 돌멩이레터가 찾은 탁월하고, 진정성 있는 네 번째 멋쟁이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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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물결님. 글 쓰고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손현 에디터라고 합니다. 현재는 헤르츠라는 에이전시에서 일을 하고 있고요. 그전에는 토스와 매거진B에서 일을 했었고, 최근에 책 [아무튼, 테니스]를 썼어요.
1인 기업으로 일하고 있지만 하던 일은 회사에 소속돼서 하던 일이랑 비슷해요. 기업에 필요한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소셜미디어를 운영합니다. 헤르츠라는 말 자체가 주파수의 기본 단위를 의미하는데, '고객과 저 사이에 주파수를 잘 맞춰서 단정한 이야기를 전한다'를 모토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회사가 하나의 팀으로서 굴러가게끔 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예전에 같이 일하면서 알게 된 동료분들과 협업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하면 그분들을 동기부여 하면서 함께 일할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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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테니스]를 쓰게 된 건, 제가 단순하게 테니스를 좋아하니까 이걸 소재로 글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감사하게도 '아무튼 시리즈'를 펴내는 출판사 중 한 곳인 '코난북스'에서 제안을 주셨어요. 그래서 집필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글을 다 쓰고, 출판까지 한 지금. 제가 쓴 글을 찬찬히 돌이켜 보니까 결국은 '우정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있어요. 테니스도, 어쨌든 본질은 경쟁하는 스포츠다 보니까 승부욕이 발동하면 나보다 잘 치는 상대나 내가 꺾어야 하는 사람을 인지하게 되는데, 그게 어느 순간 ‘아, 내가 이 사람이 있기 때문에 공을 주고받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승부와 관계없이 순수한 희열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되게 감사한 상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데에서 빚어지는 우정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우정과 경쟁. 공존하기 어려울 것 같은 단어지만, 상대가 있음으로 인해 나도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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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본적으로 성정이 차분한 편이에요.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고 기복이 적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스포츠 할 때 나오는 승부 근성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래서 게임할 때 저도 모르는 내면에 ‘공이 잘 들어갔을 때 주먹을 불끈 쥔다든지’ ‘안 들어갔었을 때 갑자기 낙심하거나’ 이런 때 파동이 좀 있어요. 그런 에너지를, 어떻게 보면 제가 평소에 사회화돼서 꾹꾹 눌러 왔다면 코트에서는 조금 더 자유롭게 발현되는 것 같아서 그런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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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첫 직장을 그만두고 재구직을 하면서 뒤늦게 진로에 대해 방황하던 때였어요. 그러면서 스타트업의 씬에 들어왔는데요. 당시에 스타트업이 한창 각광받던 때인데, 한편으로는 고용 안정성이 대기업에 비하면 많이 떨어졌어요. 같이 입사한 동료들이 1년 안 돼서 재계약 안 되고, 권고사직 당하고 이런 것들이 비일비재했었거든요. 그때 저도 모르게 '계속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계속 성과를 내야 된다. 이런 거에 쫓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멘탈이 계속 흔들릴 무렵에 마침 동네에서 테니스 코트를 발견했고, ‘맞아 나 어릴 때 테니스를 잠깐 배웠다가 그만둔 경험이 있는데’ 그러면서 다시 테니스를 배우게 되었어요. 그때는 제가 경쟁에서 지쳐 있던 때라 순수하게 공을 치면서, 뭔가에 몰입할 수 있는, 생각을 비워낼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라켓을 다시 잡게 됐고요. 그래서 한동안 초반에는 게임도 안 했었어요. 코치가 이제 게임을 하면 어떻겠냐 권해도, 그냥 공치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요라고 답했요. 테니스를 다시 하게 된 건 그런 계기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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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를 치다 보면 높은 공이 올 수도 있고, 네트 가까이 아슬아슬하게 걸리는 공이 올 수도 있고 한데, 어쨌든 저한테 오는 공은 받아 쳐야 스포츠가 되잖아요. 그게 아니면 공을 놓치는 순간 실격이니까. 또 내가 기대하지 않았거나 예측하지 않은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하잖아요. 하다못해 친구 관계나, 직장의 동료 관계나 부부 사이에서라도요. 그랬을 때 내 선에서 미리 지레짐작하지 않고, 그냥 대응을 잘하자는 식으로 태도를 갖게 된 계기들이 몇 있어요.
예를 들면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특히, 제 뜻대로 되는 게 많이 없어졌고 하다못해 오늘 아침에 아이랑 갈 때도 저는 원래 계획을 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면 날이 더우니까 아이한테 반바지와 시원한 옷을 입히고, 자전거 태워서 가야지. 이렇게 계획은 하지만 실제 그 시간이 닥치면 달라요. 아이는 두꺼운 드레스를 꼭 입겠다고 해요. 더운 여름인데도요. 결국 제가 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럴 때 져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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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대세에 지장 없고 그게 꼭 내가 계획한 대로 고집할 필요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테니스를 치다 보면, 반대 방향 쿼트에서 공이 날아올 때, 공이 저한테 똑바로 날아올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아요.
공이 갑자기 뚝 떨어질 수도 있고 회전하면서 날아오기 때문에 한 번 튀긴 다음에 확 높이 뜰 수도 있거든요. 그럴 때는, 끝까지 공을 잘 보고 치는 게 중요하다는 걸 테니스 치면서 배웠기 때문에 이러한 점이 삶에서도 여러 가지 모티브가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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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기'는 되게 중요해요. 하다못해, 저는 작년 4월에 전 직장을 그만뒀는데, 돈도 많이 주고 그만큼 업무 강도도 높고 성장할 가능성도 있는 곳이었어요. 제 의지가 있으면 더 다닐 수 있었는데, 제가 그때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서, 다시 회사와 업무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또 다른 기대할 수 있는 점도 있었고, 또 버티면 버틸 수 있었죠. 근데 제가 질문을 했던 게 내가 만약에 죽기 전에 지금의 결정에 대해서 고민할 때 내가 이 선택을 후회할까?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해봤어요. 또 다른 선택에는 여러 가지 기회비용이 있잖아요.
회사를 계속 다니면 콘텐츠 매니저 커리어로 더 크게 갈 수도 있을 거고, 직장인으로서 더 성장할 수도 있고,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었겠지만, 복합적으로 고려를 했어요. 지금 무엇이 중요한지를 보고, 그게 내가 죽기 전에 회상해 봐도 괜찮은 선택일지를 질문해 보는 거죠. 다행히 그때의 선택이 독립적으로 일하는 또 하나의 시작점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그래 지금부터 앞으로 다시 10년을 보고서 내 길을 세팅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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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에게 하나라도 유효한 질문을 주었다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상황이나 일상에 따라서 영화가 와닿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영화가 좋은 영화라 생각해요.
나라: 스위스에 가보고 싶어요. 기후가 좋고 주변 나라로 방문하기 편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립국이라는 이미지가 좋은 것 같아요. 국제 정세가 어지러울 때도, 스위스는 영리하게,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길을 간다고 생각해서요. 스위스에 몇 년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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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예전에는 네이비 컬러를 좋아해서 네이비 컬러의 옷을 즐겨 입었는데요. 요새는 녹색이 좋아요. 녹색을 보면 기분이 차분해지고 좋더라고요.
특히,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서는 녹색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볼 수 있어요. 계절에 따라 다른데요. 저는 특히 초봄과 여름 사이, 연노란빛이 도는 녹색을 되게 좋아해요. 뭔가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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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브랜드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브랜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서 세상에 잘 전달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브랜드는 고객이 느끼기에도 이 브랜드는 이런 메시지를 가지고 있구나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브랜드. 그런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라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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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로서 윔블던 대회(The Championships, Wimbledon)가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윔블던이 레전드 선수들을 예우하는 걸 보면 '아 테니스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었고 테니스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뭉친 행사'라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잔디를 1년 내내 어떻게 관리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최근에는 은퇴한 로저 페더러를 초대해서 또다시 테니스의 세계로 투어시켰는데 그런 점들이 브랜드로 보기에도 참 좋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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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는데 JBL이라는 브랜드 좋아해요. JBL은 소리를 잘 들려주는 것에 집중해서 엔지니어들이 공을 들이고, 제품 라인업도 어떻게 소리를 들려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죠. 스피커 브랜드에는 멋 부린 브랜드가 많은데, JBL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제임스 퍼스(James Perse)는 지금 입고 있는 티셔츠에요. 그냥 민무늬 티셔츠인데 유행을 타지 않아서 오래 입기도 좋고, 소재도 좋아서 좋아하게 됐어요. 옷이 잘 안 늘어나고, 또 늘어나더라도 제 몸에 어울리게 늘어나더라고요. 제임스 퍼스 제품이 가격대가 있는 편인데요. 저가 브랜드에서 빠른 주기로 사고 또 버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오래 가는 옷을 입고 덜 사면 그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뉴발란스(New Balance) 신발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도 즐겨 신긴 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 그렇게 느껴요. 예전에는 약간 불편하지만, 멋있는 구두를 좋아한다거나, 조금 더 얇으면서 엣지 있어 보이는 스니커즈도 좋아했는데 아이랑 같이 다니다 보니까, 가끔 아이가 안아달라고 할 때도 많고 해서요. 또 뉴발란스는 어떤 자리에서든 크게 격식에 벗어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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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일을 해왔지만, 온전히 쉰 적은 아직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적어도 한 달이든 반년이든, 혹은 정말 온전히 일 생각을 끄면서 안식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게 번아웃이랑은 좀 다른 개념인 것 같아요. 오히려 제 다음 일을 준비하기 위한 전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제가 콘텐츠 매니저나 에디터로서 계속 일을 하고 있지만, 워낙 기술이나 세상이 빨리 변하기도 하다 보니까 다음 스텝을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거든요. 현실에 계속 바삐 살다 보니까 그걸 못하고 있지만 뭔가를 배워야 한다면, 이발 미용 기술 같은 것도 생각해 보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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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책이긴 하지만 꼭 테니스에 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진 않아요. 인생에서 돌파구나 휴식처가 필요할 때, 테니스 코트로 나가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고, 그 안에서 우정과 경쟁, 게임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저는 그거는 어느 스포츠든, 그리고 인생의 어느 구간에 있든 공감하실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테니스라는 세계가 평소에 궁금해하셨던 분이라면 더 와닿을 것 같고, 테니스를 딱히 치지 않지만 저처럼 육아를 하거나 아니면 일에 지쳐서 전환점이 필요하신 분들도 영감을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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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남겨 주시면 다음 호 하단에 물결님의 이야기를 실어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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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 에디터의 인스타그램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본 레터에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는 모두 '손현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 윔블던, 제임스 퍼스, JBL, 뉴발란스 : 각 브랜드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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