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과 영월을 다니며,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공간지기로 활동하는 천혜영이에요. 영월의 자연 속에 자리잡은 돌멩이레터가 사람을 조망합니다. 멋을 쟁이는 사람, 이른바 '멋쟁이' 시리즈예요. 지금까지 돌멩이레터가 철학을 품은 단단한 브랜드를 발굴해 물결님께 알린 것처럼, 비정기적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묵묵히 나아가는 멋쟁이를 소개합니다. 돌멩이레터가 찾은 탁월하고, 진정성 있는 세 번째 멋쟁이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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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물결님. 저는 서울과 영월을 다니며,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공간지기로 활동하는 천혜영이에요. 영월의 자연 속에 자리잡은 1호 '이후북스테이', 2호 '점숙씨', 3호 '나의 영월 홈'과 서울 연희동 골목 2층에 있는 '연희사과'. 총 네 곳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어요. 서울에서는 틈틈이 메이크업 아티스트 일을 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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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하나둘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 처음부터 공간을 꿈꿨던 건 아니었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오랫동안 프리랜서 일을 해왔고, 서울에서 늘 바쁘게 지내는 사람 중 한 명이었죠. 그러다 어느 날, 영월에 계신 엄마가 조그마한 민박집을 열겠다고 하셨어요. 막상 가보니,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낯선 분위기의 숙소가 저를 맞이하더라고요. 마음 한편이 쿵 내려앉았어요. '도와야겠다!' 싶었고, 조심스레 공간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숙소 운영의 시작을 알렸던 그 시절을 가끔 ‘엄마의 덫’이라고 부르곤 해요. 서울과 영월을 오가며 일과 삶을 병행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버거웠거든요. 몸도 마음도 지쳐가던 나날이었지만, 어느새 그 숙소에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반응은 의외로 따뜻했어요. 자연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2호점을 열었어요.
자연에서 비로소 마음이 넉넉해지는 감각을 서울에서도 전해보고 싶었어요. 이어서 서울에서 살아온 집을 새롭게 단장해, ‘연희사과’라는 이름의 작은 책방으로 꾸몄어요. 연희사과는 예약제로 오직 한팀만 머무를 수 있어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죠. 꼬끼오, 거북이, 사과, 올빼미 네 타임으로 시간대를 만들어 운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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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라는 형태를 택한건 숙소의 개념을 넘어서 사유와 소통을 만들어 내고 싶었어요. 책이 가득 쌓인 공간이 생기니 워크숍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좋아요. 사람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할 수 있기도 하고요. 정말로 제가 좋아하는 취향을 프로그램에 모두 넣고,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죠. 프로그램을 몇 번 진행했는데 기대 만큼 재밌었어요.
연희사과 곳곳에는 제가 여태까지 쌓아온 감성이 조금씩 담겨 있어요. 좋아했던 턴테이블, 오래된 잡지와 책들, 수집해온 빈티지 소품들까지. 새로운 것을 사는 대신, 낡은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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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예정이던 구옥에서 우연히 발견한 신발장은 지금도 이 공간을 지켜주는 중요한 가구예요. 낡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물건들을 다시 살리는 일이, 저에게는 감각을 살리는 일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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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집이라는 개념을 크게 인지하지 못했어요. 늘 밖을 떠돌며 친구를 만나고, 카페를 전전하며 일상을 채웠거든요. 공간을 직접 가꾸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졌어요. 작은 조명 하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 한 줄기에 애정을 쏟다 보니, 어느새 집이 저만의 충전소가 되었더라고요. 요즘은 방전되면 꼭 집으로 돌아와요. 조용히 숨어들 듯, 동굴처럼 머무는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공간을 운영하면서 처음 알게 된 감정 중 하나는, 집에 애정을 느낀다는 게 어떤 건지였어요. 뭔가를 고치고, 정리하고, 손으로 만지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그곳에 마음이 스며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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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사과에서는 마음의 결을 따라가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열고 있어요. 그중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꿈 작업'이에요. 무의식의 메시지를 꿈을 통해 마주하는 시간이죠. 저도 반복해서 꾸던 꿈이 있었어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를 운전하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꿈. 멈추지 못하는 불안이 그대로 담긴 장면이었죠. 그런데 꿈 작업을 통해 그 감정을 인지하고 나서, 어느 날 꿈에서 차가 멈췄어요. 무언가 부딪혀서 멈추긴 했지만. 그 순간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꿈 작업 덕분에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됐어요. 평소엔 무심코 흘려보냈던 감정들도 꿈을 통해 구체적인 이미지로 떠오르니까요. 그리고 꿈을 꾼 날 아침, 눈 뜨자마자 바로 그 내용을 쓰는 모닝 페이지를 함께 하면 더욱 선명해져요. 그렇게 자신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따뜻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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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새 탐조'라는 단어가 자꾸 마음에 남아요. 전시를 보다가 우연히 관심이 생겼고, 홍제천 근처를 걸으며 새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거든요. 도시 안에 이런 생명들이 있다는 게 참 고맙고, 이 새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환경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도 돌아보게 돼요. 내가 살아가는 주변과, 그곳에 함께 머무는 존재들을 함께 상상하게 돼요.
자연과 가까워지는 삶을 실천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면서, 영월에서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1박 2일 프로그램도 이어가고 있어요. 채식 식사, 요가, 이슬 밟기. 몸과 마음을 천천히 풀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프로그램을 준비할 땐 늘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자연 속에서 숨 쉴 수 있었던 시간들처럼,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들지만, 그 안에서 주고받는 감정은 오래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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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해요. 요즘엔 빗자루 만들기에 빠졌어요. 자연 재료로 만든 빗자루는 흙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물건이에요. 자연에서 온 재료로 만들어지고,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이 정말 좋아요. 이제는 빗자루 만들기를 마스터했어요. 외워서 할 수 있을 만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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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영월에 가면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하는 코스가 있어요. 동강 물줄기를 따라 나오는 갈대숲이에요. 갈대숲을 건너면, 아지트처럼 굉장히 포근한 공간이 나오거든요. 뒹굴기도 하고, 함께 맨발로 걷기도 해요.
폼클렌징: 피부가 예민한 편이라 저자극 폼클렌징을 선호해요. 마침 요즘 새로운 폼클렌징을 들였어요. '김정문 알로에'라고, 너무 뽀득뽀득하지 않고 순하게 씻기더라고요. |
가구: 애정하는 가구라, 정말 많아요. 가구 하나하나에 모두 제 추억과 그 시절이 담겼죠. 재개발 구역이 되어서 철거 때문에 버려진 신발장도 허락을 받고 가져왔어요.
가만 두면 버려질 가구들이 제 손으로 다시 태어났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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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브랜드라면, 미래를 걱정하는 브랜드예요. 따스하게 미래를 걱정하면서 그 안에 뭔가 사랑과 그런 생명력이 같이 담긴 그런 브랜드에 마음이 가요. 미래를 걱정한다는 건, 지금 당장 우리가 쓰고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 계속 우리 후손들을 헤아린다는 거잖아요. 저희 다음의 미래에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 자연을요. 지금은 파타고니아가 떠오르네요. 생명과 자연을 생각하는 브랜드에 마음이 간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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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 의 압화판을 눈여겨 보고 있어요. 처음 압화판을 만났을 때가 생각나요. 그 작은 도구 하나가 저한테는 굉장히 큰 세계처럼 느껴졌어요. 채집이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경험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렸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몰랐던 작은 생명체들과 친해지면서 자연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어요.
인도에 다녀왔을 때도, 땅만 보고 다녔어요. 지나치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도 시선이 머무는 데 그게 너무 즐겁고 아름다웠죠. 삭막해지는 감정들이 풀과 꽃을 보면서 살아나더라고요. 정말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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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때부터 독립해 살면서 스스로를 돌보느라 치열했는데 삶이 깊어질수록 가족과 함께사는 시간에 대한 바람도 커지더라고요. 그렇게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집을 지었어요. 작년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크게 와 닿았던 한해였어요. 사랑의 마음이 깊어지면서 화나는 일이 줄었고, 평화롭게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한 해였어요. 아직은 서툴지만, 사랑의 힘은 위대해요.
꿈의 집을 완성하면서 그 안에 담긴 생각은 '함께 사는 집'이에요.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지었지만 친구도, 낯선 손님도 가족이 될 수 있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언젠가 제가 떠나더라도, 이 공간에 남겨질 온기만큼은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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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일은 21년차, 숙소는 9년차로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일했는데요. 과거에는 워커홀릭이었어요. 쉬는날 없이 일했고 쉬는 방법을 몰랐어요. 숙소 일과 메이크업 일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숙소 일에 집중하다보니 메이크업일이 저절로 줄면서 취미처럼 하는 일이 되어 버렸고, 취미가 일이 되고 일이 취미가 된 '5도 2촌'의 삶을 살고 있어요.
서울에는 시골에서 받은 영감을 서울 공간에 채우고 누리기 어려운 문화생활을 누리고요. 시골에서는 서울에서 받은 영감을 공간에 풀어내고 풍족한 자연의 에너지를 받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요.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과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밸런스를 맞추고 있어요. 메이크업과 숙소를 합한 나만의 색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은 쉬는 방법도 찾게 되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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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님이 보내주신 답장이에요 ✉️
110호 <온>편에는 물결님께 달리기를 물었어요. 아직 레터를 못 읽었다면 여기에서 볼 수 있어요.
"긍정적인 공격성이라는 이야기가 와 닿아서 코멘트를 남겨요. 저에게 달리기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운동이었어요. 그런 제가 작년에 5키로 건강 달리기를 시작하고는 지금까지 조금씩 달리기를 이어가고 있어요. 지금도 사실 달리기 너무 싫은데요. 아주 조금씩 빨라지거나 같은 속도라도 덜 힘들기도 하면서 분명 달라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게 굉장한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느꼈어요! 내가 한만큼 변화가 있으니까 더 잘하고 싶고 뭐든지 하다보면 결국에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줬어요. 저에게는 가장 큰 변화였답니다." from. 봄봄 물결님
"전형적인 달리기를 하지는 않지만 풋살을 좋아해서 3년째 하고 있는데요, 뛰면서 땀을 흘리는 행위가 긍정적인 공격성을 드러내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살면서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인 감정을 드러내는게 좋지 않다고 배워왔지만 쉽지만은 않잖아요. 뜻대로 되지 않아 요동치는 마음을 다스리는데에 머리를 비우는 운동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해요. 몸을 조금 지치게 만들면 머리가 평온해지는 효과가 있더라구요. 건강한 승부욕을 부리거나 기록을 당겨서 목표치를 달성하려 호전적인 성향을 가지는게 순응적인 미덕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꼭 필요한 쾌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하면 안되겠지만요!" from. 캐서린 물결님
"저의 첫 러닝화 on, 오버 스펙 아닐까 고민했지만 무릎과 발목이 불안한 저에게 찰떡이였어요. 덕분에 1년동안 부상없이 꾸준히 달리고 있어요. 처음엔 1분 달리던 제가 1시간을 달리고 있습니다. 성취감 최고!" from. 원우 물결님
"온(활동, 움직임)은 오프(휴식)의 반대, 꺼져 있지 않은 생명력이자 지금 시작을 알리는 스타트, 부트(boot)가 아닐까요?" from. 걷는토끼 물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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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남겨 주시면 다음 호 하단에 물결님의 이야기를 실어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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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레터에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는 모두 '천혜영 대표'님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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