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님은 ‘빵’ 좋아하시나요? 어쩐지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해지는 단어에요. 안녕하세요, 물결님 🪨 물결님은 '빵' 좋아하시나요? 어쩐지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해지는 단어에요. 저는 빵을 자주 먹진 않지만 가끔 그 맛이 생각날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한두 개씩 사 먹곤 하는데요. 생각해 보면 빵을 먹을 때는 늘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 누군가를 축하하거나 축하를 받을 때, 달콤함과 고소함이 한 번에 들어올 때, 작은 환희를 느끼곤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태극당'은 이 작은 환희를 전하고자 만들어졌어요. 먹을 것이 풍족지 않았던 시대, 태극당은 맛있는 빵을 만들어 배불리 먹게 하는 것을 애국이라고 여겼죠. 이 마음으로 1946년 서울에 자리 잡은 태극당은 76년째 빵을 굽고 있어요. 오늘은 그들이 76년 동안 써 내려온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참! 그전에 잊지 않으셨죠. 돌멩이레터가 여러분을 어떻게 불러드릴지 고민하고 있어요. 돌멩이레터 인스타그램에 들러 물결님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 초이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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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도록 '태극당'은 1946년, 광복이라는 환희와 함께 충무로에 문을 열었어요. 제빵사였던 신창근 창업주가 폐업한 제과점을 인수하면서 서울 최초의 빵집이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죠. 태극당은 '맛있는 빵을 만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념했어요. 직접 농장(농축원)을 운영해 신선한 계란과 우유로 빵을 만들었고 바삭한 피에 수제 아이스크림을 가득 넣은 모나카, 남대문 전병, 100% 순우유 식빵 등 많은 메뉴를 개발했죠. 그 결과 서울 시내에만 10여 개의 지점을 열게 됩니다. 여기에 힘입어 태극당은 1973년, 지금의 장충동으로 본점을 이전해요. 오로지 태극당을 위해 지어진 4층짜리 흰색 건물이었죠. 태극당의 담백한 무궁화 로고를 닮은 이곳에서 태극당은 여전히 빵을 굽고 있습니다.
태극당에 위기가 찾아온 건 2013년 경이었어요. 신창근 창업주가 세상을 떠나고, 2대 신광열 대표마저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면서 당장 태극당 경영에 공백이 생겨요. 태극당을 책임질 사람은 현재 3대 대표인 신경철 전무뿐이였죠. 당시 신경철 전무는 사업과 거리가 멀었어요. 제빵보다는 힙합을 좋아했고, 경영 공부라고는 태극당 카운터에서 보낸 1년이 전부였죠.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어요. 국내에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태극당을 찾는 손님의 수도 급격히 줄었어요. 어떤 날은 손님이 손에 꼽을 정도였죠. 근처에 대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님 열에 여덟은 수십 년 된 단골들 뿐이었어요. 200명이던 직원은 30명까지 줄었고요.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신경철 전무는 '이러다 망하겠다'라는 위기를 감지하게 됩니다. 변화가 필요한 때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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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철 전무가 태극당을 맡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태극당을 리브랜딩 하는 것이었어요. 태극당이 생겨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손님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서울 최초의 빵집'이라는 타이틀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리브랜딩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어요. 바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어요. 물결님, 한 번 생각해 봐요. 신경철 전무가 리브랜딩을 결정한 2015년, 이미 태극당에는 69년의 시간이 축적되어 있었어요.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태극당이 존재했죠. 신경철 전무는 이것이 태극당 브랜딩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랑받는 이유는 지키되, 전달하는 방식은 바꾸는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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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당을 태극당스럽게 | 맛과 사람 태극당은 태극당스러움을 찾아 견고하게 만드는 데에 집중했어요. 첫 번째는 태극당의 맛이에요. 새로운 빵을 개발하는 대신 태극당의 시그니처 메뉴를 공고히 하였어요. 태극당의 오랜 베스트셀러인 '야채 사라다빵', '시본케이크', '버터케이크',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브랜딩의 중점에 두었어요. 그것이 태극당스러움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이 제품들은 현재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어요. 대신 빵 하나하나의 품질을 높였어요. 건강을 위해 설탕량을 줄이고 마가린은 버터로 교체하면서요.
수제로 빵을 만드는 제과점에서 메뉴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건 곧 빵을 만들던 사람들이 여전히 그 빵을 만들고 있음을 의미해요. 현재 태극당 매장의 1층에서는 빵을 팔고, 2층에서 4층까지는 빵을 만드는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각 층에는 장인분들이 있어요. 마치 게임의 각 단계마다 마주치는 끝판왕 같았는데요. 이름하여 '모나카 아이스크림 장인', '전병 장인', '제빵 장인'이에요. 모두 이곳에서 40년 넘게 태극당의 맛을 지켜오신 분들이죠. 모두 신경철 전무가 어렸을 때부터 인사를 나누던 공장장님들이에요. 그러니 여러분이 지금 먹고 있는 모나카는 기계가 짜낸 것이 아닌 40년 넘게 아이스크림만 만든 장인이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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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당을 태극당스럽게 | 공간 한 편 빵을 파는 매장도 리브랜딩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2013년에도 빵을 지게로 실어 나를 만큼 노후된 지점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70년이 담긴 매장을 리브랜딩 하려니 고민이 밀려왔어요. 무엇을 얼마나 바꿀지 기준이 없던 것이죠. 신경철 전무는 태극당스러운 매장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어요. 그리곤 자신이 어릴 때 드나들던 태극당의 모습을 그려내기로 결정해요. 모든 것을 세련되게 바꿀 수도 있었지만 이 매장은 1973년부터 태극당을 담아온, 그야말로 태극당의 요소들이 가득한 곳이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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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극당의 실제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것들을 모두 살립니다. 요란스럽지 않은 중후함을 추구했던 신창근 회장의 멋도 담았죠. 루바 인테리어라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볼 수 없는, 밟으면 소리가 날 것 같은 갈색 나무 자재와 매장을 밝히는 중앙부의 대형 샹들리에. 이 샹들리에는 1973년 장충동으로 이전하면서 직접 주문 제작하여 만든 태극당의 시그니처였죠. 당시에는 호텔을 제외하고 이런 샹들리에가 달린 곳은 태극당뿐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밑으로는 보이는 '태극(太極) 식빵'이라고 쓰인 대형 원목 현판, 농축원 벽화, '카운타'라는 이름과 한자로 '납세로 국력을 키우자'라고 쓰인 현판을 모두 그대로 살렸어요. 그 결과 리모델링을 했지만 느껴지는 것은 1973년의 태극당 그대로였죠.
이렇게 태극당은 더 태극당스러워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오히려 새롭다며 태극당을 반겼어요. 태극당이 매장을 리뉴얼한 2015년은 '레트로(retro)'가 유행이었는데요. 태극당은 단순 유행이 아닌 '레(re-)'트로이자 '뉴(new-)'트로 그 자체였죠. 실체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납득할 수 있는 서사가 있을 때 브랜드는 강력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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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당스러움에 새로움을 더하여 | 전달 방식태극당이 바꾼 한 가지는 태극당을 전하는 방식이에요. 태극당은 더 많은 사람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을 알기를 바랐어요. 그 방법으로 브랜드와의 협업을 택했는데요. 태극당이 협업하는 브랜드의 기준 역시 명확합니다. 태극당이라는 브랜드의 소스를 잘 알고 있고, 또 이와 결이 맞아야 하죠. 처음 브랜드 협업은 1세대 힙합 브랜드 브라운브레스와 이루어졌어요. 프로젝트 B를 통해 '장인'이라는 태극당의 아이덴티티를 전달했죠. '서울메이드'를 통해서는 서울을 누비며 이야기를 담는 스니커즈 브랜드 마더그라운드와 '서울'에 관해 이야기했어요. 100년 된 이탈리아 스니커즈 브랜드 수페르가와는 전통과 정통을 이야기했죠. '장인', '서울', '전통과 정통'. 어떤가요, 모두 다 다른 브랜드이지만 태극당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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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결과 태극당은 변함과 동시에 변하지 않으며 다시 사랑받고 있어요. 글을 쓰면서 한 가지 떠오르는 단어가 있어요. 바로 크리에이티브(creative)에요. 물결님은 크리에이티브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우리는 보통 이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새로운 것’이라고 여겨요. 그러나 태극당은 1946년의 모습에서 크게 변한 것이 없죠.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힙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크리에이티브란 없는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을 제대로 찾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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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우리만의 스탠스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장인정신과도
연결된다고 확신하거든요. 옛날 그대로 하는 것만이 장인정신이 아니고, 맛과 전통은 지키면서
시대 흐름에 맞게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변화할 수 있는 용기 또한 장인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카롱이나 베이글 매장이 될 순 없잖아요?
(중기이코노미,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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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쓰인 76년이라는 이야기를 쓴 태극당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해요. 태극당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태극당의 물품 192점을 유물로 기증하였어요. 우리나라 제빵 역사 그리고 태극당의 히스토리가 고스란히 담긴 것들이었죠. 위에 소개해 드렸던 매장의 태극식빵이 쓰여진 나무 현판과 카운타에 놓인 현판 모두 박물관에서 진품을 볼 수 있어요. 지금 우리가 매장에서 보는 것은 복제품이고요. 또 창업주 신창근 회장과 지금은 없어진 뉴욕 제과의 김봉룡 창업주가 함께 약속한 제빵 선서까지. 76년이라는 시간의 축적은 그 스스로 기록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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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된
태극당의 시작인 1946년부터 지금 2022년까지 76년. 1년도 쉽지 않은 이야기의 지속이 76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브랜드가 우리에게 제품만 주는 것은 아닐 거예요. 코닥은 내가 본 아름다운 순간을 다른 이에게도 보여줄 수 있게 만들어줬고, 샤넬은 여성들에게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을 수 있는 제스처를 선사했죠. 그리고 이것들은 여전히 유효해요. 이번 레터를 쓰기 위해 태극당 자료를 찾다가 재밌는 글들을 발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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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 13년 정도 살았어요. 여기 근처에서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았는데 모나카를 좋아해서 종종가서 먹었어요. 그러면 휠체어 타신 사장님이 시본케익빵 한봉지를 아들손에 쥐어 주시더라구요. 아이들을 무척 이뻐라 하셨는데... 언젠가부터 안보이셔서 걱정했는데... 속상하네요. 그래도 최근에 갔을 때는 주말에 손님도 많아지고 점점 흥하는 것 같아 참 다행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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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연애할때 사준케익이였는데 ㅋㅋ 이제는 큰애가 커서 제과제빵을 배운다고해서 더 관심가는곳'
(MBC공식 유튜브 '엠뚜루마뚜루',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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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당이 열심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쌓는 동안, 태극당과 함께 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쌓아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찌 보면 태극당은 누군가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신경철 전무는 태극당의 100년을 묻는 질문에 '살아있는 브랜드'가 되기를 바란다고 답했어요.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브랜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같았어요. 각자에게 태극당이 과거로, 현재로, 미래로 이어지면서요.
태극당의 한 줄은 무척 간결해요. '1946년 서울에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죠. 여러분은 어떤가요.
"물결님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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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목요일,
돌멩이레터 8호가 발행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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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omment ✏️
76년이라니, 삼십 대인 제가 살아온 만큼을 다시 시작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30년의 관성을 이길 수 있을까'와 '깨우친 바가 있으니 어떤 쪽으로든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동시에 해보면서요. 요즘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해요. 무엇보다 나를 찾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때죠. 태극당은 한 매체에서 '변하지 않는 것도 변하는 것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했어요.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죠. 오늘 밤에는 노트를 펼쳐 제 이야기의 키워드를 정리해보려 해요. 점점 나에게 가까워짐을 느끼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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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초이입니다.
사람과 브랜드를 좋아해요. 매력적인 브랜드 뒤에는 늘 매력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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