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님, 어제는 식목일이었어요. 그리고 종일 비가 왔죠. 비록 비가 와서 돌멩이레터 51호 | 서울가드닝클럽
가든과 가드닝
물결님, 어제는 식목일이었어요. 그리고 종일 비가 왔죠. 비록 비가 와서 애써 핀 꽃잎이 떨어지고 식물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재난 문자가 발송될 정도로 한창 대기가 건조했던 며칠. 이 역시 식물에는 필요했던 하루였어요.
지난주에 배우 김신록님의 북토크에 다녀왔는데요. 요즘 한창 ‘비 생물'의 세계를 표현하는 연기를 공부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로봇이나 사물처럼 생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죠. 연기란 재연이 아닌 또 다른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의 돌멩이에게는 식물이, 그들의 언어일 것 같아요. 이름만 들어도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도시 속 그린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green lifestyle developer)를 표방하는 '서울가드닝클럽'(seoul gardening club)을 소개합니다.
- 초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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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드닝클럽의 시작은 2017년으로 돌아갑니다. 10년간 광고 기획일을 하던 이가영 서울가드닝클럽 대표는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제출해요.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낀 시기였죠.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우연하게도 풀과 나무가 눈에 들어왔어요.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것이었죠. 이름이 뭔지, 문득 궁금했어요. 당연히 그 식물들의 이름을 알 리 없던 이가영 대표는, 내가 모르는 내 주변의 존재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모른 채 온 것이죠. 그 길로 가드닝 클래스를 검색하고 등록했어요. 가드너가 된, 한순간의 일 이었죠. 그것이 정원 디자인 시공 현장의 아르바이트로, 조경대학원의 입학으로, 일본으로의 비즈니스 탐방으로 이어졌죠. 그동안 모르던 무궁무진한 세상을 열게 된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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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드닝클럽
2018년, 이가영 대표는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실험해요. 당시 서울 도곡동에 살고 있었는데요. 빌라가 밀집한 곳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정원을 가꿀만한 공간이 없었어요. 그러다 빌라 옥탑을 발견하죠. 아무도 쓰지 않는 곳이었어요. 그곳에 혼자 야생화와 허브를 가꾸고 이를 자신의 SNS에 공유했죠. 그러다 문득 공유숙박 모델인 '에어비앤비'를 떠올렸어요. '정원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곧 SNS에 공고를 올려 참여자를 모집했어요. '퇴근 후 나는 가드너(gardener)가 된다'는 카피와 함께요. 놀랍게도 바로 15명이 모였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퇴근 후 식물을 심으러 모였죠. 그것도 돈을 내고요. 이가영 대표는 이때 '가드닝에 도시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가 있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도시의 활용되지 않는 유휴공간을 찾아 가드닝이라는 콘텐츠를 채워 넣은 이 프로젝트가 확장되어 지금의 서울가드닝클럽의 공유정원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어요. 서울가드닝클럽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각자의 정원을 가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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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이 아닌 하는 정원
물결님, 혹시 조경의 뜻을 아시나요? 조경은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를 계획⋅설계⋅시공 관리하는 것'을 의미해요. 영어로 landscape architecture. 그러니 단순히 식물만을 심고 가꾸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설계하는 일에 가까워요. 서울가드닝클럽이 추구하는 조경은 이보다 체험적이에요. 이들의 정원은 공간을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자연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을 설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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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드닝클럽
'도심 속 정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볼게요. 어떤 장면이 그려지나요. 저는 사람이 지나다니는 공간과 분리된 곳에 식물들이 심어져 있고 그걸 멀리서 바라보는 장면이 떠올라요. 그것들을 직접 만져보거나 피부로 느껴보지는 못하죠. 정원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공원 역시 우리는 그 안에서 공원을 바라볼 뿐이에요. 사람과 자연, 도시와 자연은 한 공간에 함께 할 순 있어도 섞이지는 못하죠. 서울가드닝클럽의 공유정원은 이 지점에서 달라요. 그보다 더 적극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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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드닝클럽
서울가드닝클럽은 멤버십제로 공유정원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멤버로 참여하면 한 계절 동안 식물을 심고 식물을 키우는 법을 배워요. 로메인, 타임 같은 허브 종류나 야생화, 또는 토마토나 무 같은 야채 등 다양한 식물을 심죠. 매주 정원에 나가 물을 주고 가꾸고 길러내요. 또 가장 적극적인 행위인, 작물을 수확하고, 수확한 허브와 채소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해요. 누구의 무가 가장 큰지 콘테스트를 열기도 한다고요. 때로는 지인을 초대해 수확물을 나누는 마켓을 열기도 합니다. 잠시 자연 속에 머무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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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시간을 깨우는 정원
서울가드닝클럽이 이러한 경험을 만드는 이유는 명확해요. 흙을 만지고, 어떤 때는 유달리 강렬한 햇볕이 쬐는 날을, 어떤 때는 강하게 내리는 비를 걱정하면서 식물을 길러내고 수확하는 것. 식물이라는 생명의 한 사이클을 경험하면서 자연의 원리를 느껴보게 하기 위함이에요. 때로는 조건을 잘 맞추지 못해 잘 길러내지 못하는 결과까지도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라고, 피고, 지는 것. 돌보는 만큼 잘 자라나는 것. 도시 생활을 하다 보면 잊게 되는 이 단순한 감각을 다시금 느끼도록 하는 것이죠. 마치 수고스럽게 자연의 원리를 깨치러 가는 아웃도어 활동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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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드닝클럽
한편 이러한 서울가드닝클럽의 접근은 그들의 정원 디자인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요. 서울가드닝클럽은 공유정원 프로그램 외에도 정원 디자인 의뢰나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도 하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도시인들이, 정원을 통해 계절이 변하는 감각을 느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요. 예로, 이가영 대표의 첫 정원작업이었던 서울역7017의 '초속 정원'은 도시 사람들에게 자연의 시간을 되돌려준다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단순히 보기에 예쁘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라, 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원예종으로 구성했어요. 어떤 식물은 여름에, 어떤 식물은 겨울에 볼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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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드닝클럽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는 계절이 변하는 감각을 도시인이 느끼도록 하는 거예요. 어느 한 계절에만 예쁘고 마는 정원의 모습은 지양하려고 해요. 도시 공간에서는 그 계절에 가장 예쁜 식물이 어느 날 확 나타났다가, 자고 일어나면 다시 또 다른 싱싱한 식물들도 한꺼번에 교체되는 모습이 흔해요…. 하지만 자연스러운 정원의 모습은 새로운 식물이 자라나기도 하면서 쇠퇴의 모습이 함께 가는 것이에요." - 이가영 대표(서울문화재단,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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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드닝클럽
균형 서울가드닝클럽을 처음 들여다봤을 때부터 마지막 문단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항상 붙어 다닌 단어가 있어요. 혹시 눈치채셨을까요. 바로 '도시'에요. 홈페이지에 따르면 서울가드닝클럽은 '자연에 기반한 라이프스타일을 공간 개발을 통해,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쓰여 있어요. 가드닝을 하나의 '도시문화'라고 얘기하죠. 처음에는 정원을 얘기하면서 자연보다 도시나 공간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의아했어요. 곰곰이 생각해봤죠. 서울가드닝클럽의 공유정원은 애초에 도시라는 제한된 요인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어요. 올해 운영되는 공유정원 역시, 서울의 건물들에서 진행돼요. 만약 가드닝활동을 하러 매주 주말 아침, 교외로 나가야 했다면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어요. 도시 속 정원. 지극히 도시로만, 지극히 자연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각자가 생활하는 공간에서 자신만의 정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서울가드닝클럽의 메시지가 와 닿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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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드닝클럽
다양성 한 편, 서울가드닝클럽은 '다양성'을 향해 나아가요. 공유정원에는 식물을 재배하는 프로그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꿀벌 정원, 웰니스 프로그램, 제로웨이스트 재배법 등을 함께 구성해요. 식물과 꿀벌이 함께 공존하는 작은 생태계를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식물이 자라는 것과 맥을 함께하는 웰니스, 제로웨이스트 같은 문화를 함께 배치하기도 해요. 때로는 가드닝 전문가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그린칼라클럽을 개최하거나, 다양한 도시환경을 다루는 매거진을 출판하면서 끊임없이 '지금 도시'에 대한 이슈를 던져요. 이러한 활동은 도시로 하여금 더 많은 다양성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요. 다양한 접근이 다양한 이야기로 이어지죠. 이러한 활동이 서울가드닝클럽이 종전에 꿈꾸는,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삶에 더 많은 녹지가 필요하다는 걸 몸소 경험해보면, 조그마한 파장이 생긴다. 그 파장이 계속되면 공급자에게 닿을 것이고, 결국 다른 형태의 주거 환경을 요구하는 흐름이 생길거라고 생각한다"
- 이가영 대표(BAZAA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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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드닝클럽
글을 쓰고 나니 '서울가드닝클럽' 이름이 눈에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서울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정원을 만드는 브랜드이구나라고 생각했거든요. 다시 보고 조금 감탄했어요. 도시로 대변되는 서울과, 완결된 모습인 가든이 아닌 동작을 나타내는 가드닝, 그리고 사람이 모인 클럽. 내가 발붙이고 있는 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생명력이 느껴졌어요. 그동안 도시와 연결되는 단어들이, 다른 단어들로 확장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결님은 어떤가요. 레터를 읽고 떠올린 물결님의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요?
4월 13일 목요일,
돌멩이레터 52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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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omment ✏️
서울가드닝클럽 홈페이지에 'WORK SPIRIT'이라는 콘텐츠가 있어요. 일을 하는 원칙 또는 모토쯤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LABOR, WORK, ACTION.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 나오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3가지 요건이라고 해요. 서울가드닝클럽은 이 요소가 정원을 가꾸는 것에 부합한다고 말해요. 이를 각각 '자연과 연결되는 참된 노동','자신의 정체성을 도시와 공간에 표현하는 작업', '도시의 환경과 공동체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으로 재정의 하고 있어요. 이를 읽고 저도 제 나름의 정의를 내려봤어요. '제 몸을 움직여 깨우는 노동', '제 정체성을 드러내는 생산이자 작업', '제가 하는 일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 결국에는 글의 마지막이 나를 돌아보는 것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나만의 정원을 갖고 이를 가꾸는 일은 저 스스로를 돌보는 것과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초이입니다.
사람과 브랜드를 좋아해요. 매력적인 브랜드 뒤에는 늘 매력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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