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학창 시절에 배운 시 중 가장 선명히 기억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학창 시절에 배운 시 중 가장 선명히 기억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의 구절이에요. 어린 나이에도 그 의미의 생소함과 명확함에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오늘의 브랜드 '커피 리브레(COFFEE LIBRE)'를 살펴보고 이 시가 떠올랐답니다. 세상에 이름 없는 무언가는 없어요. 사람에도 물건에도, 유형의 것에도, 무형의 것에도 불리는 이름이 있죠. 리브레가 그런 일을 합니다. 우리가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까지, 그 과정에서 잊힌 얼굴과 이름을 복원 해내요. 그러한 맥락에서 리브레는 종종 자신들이 하는 일을 고고학자에 비유하곤 하죠. 리브레가 '얼굴 있는 커피'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 초이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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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의 시작, 발굴
리브레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에요. 스페셜티 커피는 통상적으로 '산지의 좋은 재료들이 한 잔의 컵에 이르기까지 표현된 커피'라고 불리는데요. 그만큼 생두의 품질이 중요합니다. 리브레 서필훈 대표는 이를 위해 리브레 운영 초기부터 직접 전 세계 커피 산지를 직접 방문해왔어요. 인도,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 매년 120일 이상씩을 커피 산지에서 보내며 품질 좋은 생두를 발굴해 왔죠. 여기서 커피의 첫 번째 얼굴을 마주해요. 바로 커피를 만드는 최초의 인간, 농부들이에요. 해발 고도가 2,000m에 다다르는 그곳에서 서필훈 대표는 농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커피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생두를 선택하죠. 그중에는 130년째 커피 농사를 이어온 과테말라의 농장도 있고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인도나 예멘의 커피농장도 있어요. 리브레는 이렇게 들여온 생두를 직접 로스팅 하여 원두와 음료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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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만드는 첫 번째 얼굴
씨앗이었던 커피 체리가 열매를 맺고 수확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피라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리브레는 고객에게 커피를 전하며 그 '과정에 놓인 얼굴을 보여주는 일'에 애쓰고 있어요. 리브레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면요. 어쩐 일인지 커피 사진보다는 인물 사진이 훨씬 많아요. 바로 위에서 만난 커피 농장의 농부들이에요. 자신의 농장 현판 앞에서 커피 열매를 들고 있거나 생두를 씻고 있는 모습들이죠. 원두를 담는 패키지는 또 어떻고요. 보통은 패키지에 원두의 종류나 맛을 나타내는 그래픽을 그리는데요. 리브레의 원두 패키지에는 농부의 얼굴과 함께 그의 이름, 농장명이 적혀있어요. 고객이 한 잔의 커피를 들 때 한 켠 으로 농장과 농부의 정경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죠. '산타 로사 피카마라', '마카드 후세인', '카스티요'. 낯선 단어들이 실재하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눈앞에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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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카 리브레
리브레는 그 스스로 얼굴이 되기도 해요. 커피 산지에서 생두를 수입하는 것도 모자라 2016년, 중남미에 위치한 나라 니카라과에 직접 커피농장을 운영하기로 해요. '핀카(finca, 농장) 리브레'라는 이름으로요. 사실 이러한 행보는 아주 드물어요. 경제적으로나 사업적으로 효용이 높지는 않거든요. 주변에서도 다들 미쳤다고 했죠. 누군가가 잘 기른 생두를 구매하면 될 것을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직접 농사를 짓다뇨. 하지만 이런 행동의 이유는 무척 명료합니다. 리브레는 커피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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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어봐야 커피를 제대로 아는 것 아니겠어요?
(한국경제,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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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스스로 농부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커피나무에 가장 잘 맞는 비료는 어떤 것인지, 가지치기를 어떻게 해야 하고 그늘나무의 경사막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동안 전 세계 400여 개의 농장들을 돌아보며 배운 것들을 실험했죠. 그 결과 핀카 리브레에서 수학한 생두를 싱가포르에 수출하기도 하고, 로스팅 하여 국내에도 판매하고 있어요. 농부이자 로스터이자 바리스타인 리브레. 이쯤 되니 리브레 뒤의 얼굴들도 궁금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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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다루는 곳이여서일까요. 리브레 곳곳에서 직원들의 이야기가 많이 보여요. SNS는 물론, 뉴스레터 월간 리브레에서는 매달 한 명의 직원을 소개해요. 두 번이나 리브레에 입사한 직원, 로스팅을 하여도 하여도 원두가 계속 생겨난다는 로스터, 리브레의 팬에서 시작하여 8년째 커피를 내리고 있다는 바리스타. 그들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자니 새삼스레 깨달았어요. '아, 브랜드 뒤에는 사람이 있었지'라고요.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곧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해요. 영역을 막론하고 모든 브랜드에는 그 뒤에 실재하는 사람이 있죠. 대표님께 여쭈었어요. 리브레라는 조직을 운영하는 건 어떤 것이냐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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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에는 스페셜티 커피 사업이 '좋은 커피'를 파는 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좋은 사람'이 커피를 파는 일이더라고요. 당연하지만 매출이건 품질이건 사람에 성패가 달려 있어요.
- 서필훈 대표님(돌멩이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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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미친 사람들이 벌이는 일
리브레를 조사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눈에 꽂힌 한 문장이 있었어요. '네, 우리는 커피에 미친 사람들입니다.' 와우. 어느 정도로 미쳤길래 저렇게 당당하게 미쳤다고 말하는지 궁금했죠. 그리고 홈페이지를 둘러본 후에는요. 네, 무척 잘 지은 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커피에 미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 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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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커피 집대성
리브레에는 독특한 직무가 하나 있어요. 바로 커피에 대한 학술 연구를 하는 연구원입니다. 리브레 홈페이지의 아카이브 메뉴에 가보면요. 총 861개의 자료가 있어요. 로스팅 중의 원두 색깔 변화에 관한 논문, 커피향의 진정 효과에 관한 글 등 어디에서 이렇게 모았나 싶을 정도로 커피에 관한 각종 레포트와 아티클이 가득하죠. 뿐만이 아니에요. 리브레에서는 독특하게도 '책'을 판매하고 있는데요. 모두 원제가 있는, 리브레가 번역을 하고 서필훈 대표가 감수를 하여 출판한 번역서들이죠. 마치 커피와 관련한 자료를 모두 모으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커피 판 브리태니커 같았달까요. 누구도 하지 않는, 이러한 리브레의 활동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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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에는 스페셜티 커피라는 개념과 시장 모두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최고의 마케팅은 스페셜티 커피의 정보 공유를 통한 소통의 확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왕이면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학술적인 콘텐츠를 축적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제가 시작할 당시만해도 국내에서 스페셜티 커피 공부를 일찍 시작한 분들은 마땅한 스터디 자료가 없어서
고생을 꽤 했습니다. 앞으로는 커피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큽니다.
- 서필훈 대표님(돌멩이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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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원두를 납품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정기 세미나를 열기도 하고요. 커피 농장 이름, 농장주, 재배 고도, 품종, 커핑 노트 등을 꼼꼼히 기록한 1,161종류의 원두 가이드도 공유합니다. '커피에 미친 이 사람들'은 스페셜티 커피라는 크지 않은 시장에 혼자 갇히기보다는 '함께 커나가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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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페셜티 커피 경헝의 확장
한 편으로는 일상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들도 고민해요. 사실 스페셜티 커피를 집에서 먹기 위해서는 몇 필요한 장비들이 있거든요. 이러한 장벽을 줄이고자, 물이나 우유에 바로 타먹을 수 있는 스페셜티 인스턴트 커피(나초)를 개발하고요. 매주 로스터가 선정한 원두를 받아볼 수 있는 원두 구독 서비스 장복을 운영하기도 하죠. 커피를 내리고 맛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퍼블릭 커핑을 열기도 합니다. 모두 스페셜티 커피를 보다 가깝게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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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레의 잊힌 얼굴을 복원하는 작업은 개개인의 얼굴과 얼굴 사이를 연결하는 것으로 이어져요. 매년 커피 산지를 방문하는 것은 좋은 생두를 구하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농부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예요. 좋은 품질의 커피를 길러주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리브레 고객들이 그대들의 커피로 얼마나 행복해했는지를 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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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사이에 생겨나는
때로는 그들의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역할'도 해요. 리브레의 거래처 중 온두라스의 ‘챠키테’라는 마을이 있어요. 이 마을의 해발 고도는 2,000m. 이곳에 위치한 커피 농장은 환경이 열악했어요. 아홉 가구가 운영하는 이 농장은 좋은 품질의 열매를 수확하고도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원 정도 하는 펄퍼(커피 열매껍질을 까는 기계) 한 대가 없어 열매를 헐값으로 팔아왔죠. 서필훈 대표는 이를 보고 이 마을에 펄퍼를 들여주고, 보다 품질 높은 커피를 재배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을 함께 전달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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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챠키테 마을은 더 좋은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여 이전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게 됩니다. 리브레에도 더 좋은 품질의 원두를 제공할 수 있었죠. 이런 과정이 몇 번 쌓이면 어느새 리브레와 커피 산지 사이에 선이 하나 생겨나요.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서로에게 더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리브레가 추구하는 비즈니스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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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레 간지론 리브레의 이러한 행보는 곧 리브레의 '아름다움'을 창조해요. 서필훈 대표님은 리브레를 만들 때부터 ‘막연하게 우리가 하는 일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움과는 달라요. 리브레의 아름다움은 관계에서 와요.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그 속의 내 역할을 인지하고, 그 관계를 대하는 태도에서 아름다움이 만들어지죠. 커피 산지의 농부들과 이를 들여오는 리브레, 생두를 볶는 로스터들,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고객까지. 무언가를 향한 열망을 기반으로 만들어내는 이 일련의 과정이 곧 리브레가 커피를 통해 표현하고픈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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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커피에 관해 호기심을 좇고 있다는 대표님께 여쭈었어요. 2009년을 시작으로 13년째 리브레를 운영해오면서 '언제 리브레의 메시지가 고객들에게 닿았음'을 느끼는지요. '찰나의 장면'을 통해서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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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장면들을 통해 고객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보며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고객에게 보내드린 엽서나 월간 리브레가 벽에 걸려 있는 사진을 SNS에서 봤을 때,
매장 근처에서 "여기 커피 맛있어"라고 일행에게 얘기하며 지나가는 사람을 봤을 때.
그런 점에서 커피 리브레는 고객이 만든 이런 작은 조각들로 여전히 그려지고 있는 그림이지 않을까 합니다. - 서필훈 대표님(돌멩이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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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답변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리브레가 커피라는 과정 속에 잊힌 얼굴을 복원하려 했던 이유는, 어찌 보면 그 '수많은 얼굴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이 찰나의 기쁨의 순간을 보기 위해서'이지 않았을까 라고요. 물결님은 어떤가요. 이러한 찰나를 마주하고 있을까요. 오늘의 레터가 물결님의 찰나를 발견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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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목요일,
돌멩이레터 10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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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omment ✏️
리브레 로고는 '파란 마스크를 쓴 레슬러'의 얼굴이에요. 저는 그 안에 숨겨진 표정의 의미를 알고는 잊을 수가 없었어요. '1라운드에 흠씬 두들겨맞았지만 이내 2라운드에 올라야 하는 복잡한 심경의 레슬러.' 당시에는 소소한 웃음이 튀어나왔는데요, 어쩐지 종종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 레슬러, 나 아냐?' 하면서요. 우리가 아메리카노로 아침을 열기 전부터 스페셜티 커피를 해왔던 리브레의 동력은 다름 아닌, 호기심과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었어요. 저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때론 참 고통스럽고 지리멸렬할 정도로 괴롭기도 해요. 그럼에도 늘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리곤 다시 일어나죠. 어쩌겠어요. 이미 흠씬 맞았어도 또 다른 결과를 기대하며 링에 오르는 수밖에요. 찰나의 순간을 마주하길 고대하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를 응원할게요. 오늘은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보며 레터 마치고 싶어요. 물결님, 리브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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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초이입니다.
사람과 브랜드를 좋아해요. 매력적인 브랜드 뒤에는 늘 매력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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