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봐온 물건이 문득 낯설게 다가와 우주처럼 깊어 보일 때가 있죠. 익숙한 사물이 미지의 얼굴로 말을 걸
*오늘 돌멩이레터는 4시간 늦은 오후 8시에 발송해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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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1. 침대. 창문. 밧줄. 공. 사슬. 통나무. 편지. 무작위로 나열한 단어가 아니에요. 맥거핀 매거진이 다룬 주제들이죠. 새 물건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사물이 가진 비범한 이야기를 다루는 매거진, 그 시작을 알아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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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2. 예상치 못한, 하지만 영감을 주는 방식으로 : 안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읽을수록 생경하고 낯설어져요. 일상적인 사물을 다루는 맥거핀만의 독창적인 언어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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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3. 잡지라는 종이를 넘어 확장 : 때론 팟캐스트의 소리로, 전시라는 공감각적 경험으로. 사물의 깊은 맥락을 헤짚고 현장감있는 현실의 화두까지 담는 맥거핀의 신선한 행보를 살펴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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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봐온 물건이 문득 낯설게 다가와 우주처럼 깊어 보일 때가 있죠. 익숙한 사물이 미지의 얼굴로 말을 걸어올 때, 그 신선한 당혹스러움은 내가 그간 얼마나 몰랐는지를 깨닫게 하며 내면에 파동을 남깁니다. 오늘은 그 신선함을 한 권의 잡지로 전하는, 맥거핀 매거진(Macguffin Magazine)을 소개하려해요.
맥거핀 매거진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기반의 독립 잡지에요. 창립자이자 편집자인 커스틴 알헤라(Kirsten Algera)와 에른스트 판데르 후번(Ernst van der Hoeven)은 시각 디자이너이자 동료였고, 함께 클럽 도니(Club Donny)라는 프로젝트성 잡지를 만들었을만큼 매거진이라는 매체를 좋아했죠.
맥거핀의 시작은 2013년, 베트남 북부에서 인디고 염색공과 삼베 직조공을 찾아 오토바이로 달리던 긴 여정 속의 대화에서 비롯됐어요. 두 사람은 디자인과 공예의 관계에 깊은 흥미를 느꼈고, 새롭고 아이코닉한 디자인만 추종하는 하이 디자인 중심의 업계에 대한 반감이 컸죠. 동시에 사물의 디자인이 아닌 사물에 얽힌, 사적이면서도 심도있는 스토리를 다룰 플랫폼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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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반짝이는 새 물건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물들이 얼마나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해요. 디자이너들이 자기 작업을 특별하게 드러내려 애쓰지만, 맥거핀 팀이 흥미롭게 느끼는 건 오히려 억지로 시선을 끌지 않는 것들이었죠. 이름이 있든 없든, 디자인된 것이든, 익명으로 만들어진 것이든, 실제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 힘을 가진 비범한 사물 말이에요. 그렇게 2015년 사물의 비범한 이야기를 담는 맥거핀 매거진이 탄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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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맥거핀은, 반년에 한 번, 하나의 오브제나 단어를 고르고 그것을 전혀 예상치 못한, 하지만 영감을 주는 방식으로 끝없이 탐구합니다. 익숙해서 무심코 지나친, 혹은 쉽게 간과하던 사물을 파고들죠. 우리와 사물이 맺어온 다채롭고 기묘한 관계를 발굴하고, 그 의미를 기록합니다. 맥거핀은 잡지를 넘어, 사물의 삶(Life of Things)을 비추는 플랫폼을 자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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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의 가장 큰 특징은 200페이지에 걸쳐 단 하나의 사물을 집요하게 탐구한다는 점이에요. 평범한 사물에 새겨진 역사와 정치, 언어와 감각을 해부하듯 드러내며, 다 안다고 여겼던 것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만들죠. 그런데 그 집요함이 결코 지루하지 않아요. 장수가 무색할 만큼 몰입을 끌어내죠.
책 한 권, 테이블 위에 펼쳤을 뿐인데, 어느 순간엔 스페이스엑스 우주 정거장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다가도, 곧바로 옆을 지나는 개미처럼 작아져 세상을 관찰하기도 해요. 사물의 기원을 찾아 시간을 거슬렀다가, 다시 미래의 디스토피아에서 온 듯한 사물의 이야기를 만나기도 하죠. 이렇게 배율의 전환에서 오는 낙차, 분야와 시공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흥분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증폭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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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3호 <Ball 공>에서는 가장 먼저 다룰 것 같은 스포츠 볼이 아니라, 뒹구는 미트볼, 유토피아적 비눗방울, 펜 끝의 볼 같은 미시적 세계로 파고들다가, 튀어 오르는 행성과 지구를 광활한 우주에서 바라본 구체로서의 시선까지 오가며 공의 세계를 펼쳐요. 9호 <Rope 밧줄>에서는 일본 달걀을 감싸고, 가구를 묶고, K2 등반가를 지탱하는 생명의 줄에서 출발해, 화성 탐사 로버까지 이어지는 밧줄의 궤적을 추적하며 물건의 삶을 탐구합니다.
익숙한 사물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낯설어지고, 예상은 번번이 빗나갑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알던 Ball이 전부가 아니었네’, ‘그렇다면 내가 안다고 믿었던 것들은 정말 아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에 닿게 되죠. 맥거핀은 우리가 틀림없이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고정된 관점에 틈을 냅니다. 그 틈은 익숙한 세계를 처음 만나는 듯 신선하고도 다시 보게 만드는 에너지를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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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은 아름다워요. 그리고 꾸준히 낯설어요. 깊이 있는 탐구와 생경한 영감은 텍스트에만 머물지 않죠. 치밀한 이미지 리서치와 높은 완성도로 세운 시각적 톤은 매 장마다 다른 콘셉으로 펼쳐내요. 사진, 일러스트, 레이아웃이, 페이지마다 리듬과 시각적 쾌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일까요. 한 장 한 장이 아트북 같아요.
커버는 매거진의 정체성이에요. 표지에 새겨진 ‘m’은 편집장 컬스틴 알헤라가 천 번 넘게 손으로 써서 탄생했다고 해요. 맥거핀 매거진이 단순히 세밀한 정보와 풍부한 이야기를 담는 것을 넘어, 사적이면서도 자전적인 흔적을 담은 오브제가 되길 바랐다고해요. 그래서 손글씨 m 을 과감히 커버에 넣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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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매거진은 앤솔로지적 경험을 추구해요. 하나의 주제를 두고 여러 필자와 시각이 교차하며, 서로 다른 결을 지니면서도 결국 하나의 서사로 이어지는 방식이죠. 긴 글과 비주얼 에세이가 함께 호흡하고, 다양한 목소리와 시선이 한 권 안에 모여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동시에 맥거핀은 자신들의 잡지 자체를 오브제로 여겨요. 자신들이 만드는 것이 사물을 다루는 하나의 사물이라는 점을 잊지 않죠. 그래서 ‘읽고, 만지고, 간직하고 싶은 잡지’를 만들었어요. 실제로 ‘Arcoprint Milk’라는 벨벳 같은 질감의 종이에 인쇄해 손끝이 자꾸 닿고 싶은 물성을 구현했죠. 그 결과 맥거핀은 단순한 읽을거리를 넘어, 하나의 오브제로 자리 잡아 예상보다 더 넓은 다양한 독자를 만나고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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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은 화두를 종이에만 가두지 않아요. 팟캐스트(a macguffin podcast), 필드트립(macguffin field trip), 전시 등의 규정되지 않은 모습으로 확장해요. 잡지에서 던진 화두는 팟캐스트, 필드트립, 전시 등 다양한 형식으로 뻗어나가 여러 얼굴로 독자를 만납니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또 다른 매체를 통해 이어지는 사물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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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12호 <The Log>에서 파생된 팟캐스트 <Trees>는 나무의 탄생에서 사후까지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우리가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나무의 소리를 담아요. “책장을 넘길 때 나는 바스락거림은, 이 섬유가 낼 수 있는 마지막 소리이기도 합니다”라는 말이 기억나요.
15호 <The Chain>과 연계된 팟캐스트 <Chains>는 전당포를 무대로 돈과 사람, 사연과 경제가 얽힌 복잡한 생태계를 탐험해요. 같은 금액에도 얽힌 상대적인 감정의 차이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전당포가 단순한 거래 공간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자 생존의 풍경임을 드러내죠. 질문은 결국 화두로 이어집니다. “누가 전당포를 찾는가? 그리고 전당포는 도시의 사회·경제적 기반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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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에 뿐만 아니에요. 필드클럽(Field Club)을 통해 전시와 영화제로도 이어져요.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와의 협업으로 팔레스타인에 존재하는 ‘벽’을 다룬 영화를 상영했어요. 14호 주제였던 <The Wall>과 연계된 내용으로 장벽이 가진 물리적·정치적 의미를 탐구하는 시작이죠.
이렇게 맥거핀에서 소개되는 사물은, 종이잡지를 넘어 다양한 매체와 장르로 확장되어 화두를 던져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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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레터에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는 모두 '맥거핀 매거진'입니다. ⓒMacguffin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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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매거진을 읽는다는 건, 사물을 읽는 척하며 세계를 다시 배우는 일인지도 몰라요. 익숙한 것을 낯선 각도에서 비추면, 안다고 믿던 것조차 새롭게 다가오죠. 그 신선함은 일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에너지가 되고요. 저에게 맥거핀은 늘 세잔 같았어요. 매 호가 원근법을 거슬러 그린 사과처럼, 우리의 관점을 흔드니까요.“평범한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다.”라는 모리스 드니의 말처럼요. 돌멩이레터에 소개하는 브랜드들도 물결님들이 그렇게 느끼시길 바라며, 이만 글을 닫을게요.
Editor 영경 | 자신만의 언어를 완성해나가는 현재 진행형인 사람과 브랜드를 좋아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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