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한 때 연필을 '파버'라고 불렀다고 해요. 파버카스텔이 브랜드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명을 대신 point 1. 유럽에서는 한 때 연필을 '파버'라고 불렀다고 해요. 파버카스텔이 브랜드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명을 대신하는 것과 같죠. 일상에 스며든 생활용품으로서의 파버카스텔을 얘기해요.
|
|
|
point 2. 물결님의 연필은 어떤 모양인가요. 우리가 자주 접하는 육각형 모양의 연필이 파버카스텔에서 시작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둥그런 모양과 육각형 모양의 연필은 어떤 점이 다른지 소개해요.
|
|
|
point 3. 파버카스텔은 어떻게 260년이 넘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요. 가족 기업이 세대를 거치면서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인지 들려드릴게요.
|
|
|
물결님 '생활명품'이라는 단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윤광준이라는 사진작가가 최근 펴낸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에 따르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들, 특히 그중에서도 유용할 뿐 아니라 미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물건을 뜻하는 단어에요. 독특한 개념이라고 생각했어요. 명품은 사전적 정의 그대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을 의미하는데, 생활 속의 일상적인 물품은 우리가 보통 브랜드로 인식하기 어렵거든요. '일상용품, 생활용품'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책에서는, 특히 코로나를 거치면서 시간이 흘러도 가치가 살아있는 물건을 중점으로 이야기하는데요. 대전 빵집 성심당의 튀김 소보로, 책상 위의 포스트잇, 안경, 책가방, 우산 등이 등장해요. 이 중 하나로 소개한 것이 파버카스텔의 제품이에요. 왁스처리를 하지 않아 흑연의 사각거림이 살아있는 '카스텔 9000 연필'과 역시 천연 원료를 사용해 필기감이 부드러운 '그라폰파버카스텔 만년필 잉크'는 사용하다 보면 제작자의 세심한 의도를 깨닫게 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해요.
|
|
|
1761년, 독일의 뉘른베르크에 설립된 파버카스텔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필기구 브랜드에요. 26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필기구를 만들어왔죠. 한때 유럽에서는 연필을 '파버'라고 불렀을 정도로 오랜기간 연필을 만들어왔어요. 캐비넷 제작자였던 카스파르 파버(Kaspar Faber) 1대 회장이 나무판 사이에 흑연을 넣어 만든 것이 파버카스텔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색칠 공부를 좋아했던 제 침대맡에도 파버카스텔 12색들이 색연필이 놓여있어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레터를 쓰면서 생각해 보니 파버카스텔 제품이더라고요. 우리가 흔하게 쓰는 생활용품 중, 상표는 있지만 브랜드는 모르는 상태로 써온 것들이 많아요. 한 번도 브랜드명으로 불러본 적은 없는 것들이죠. 파버카스텔도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연필이라는 하나의 사물 명을 대체하는 것이죠.
|
|
|
하나의 브랜드가 하나의 사물명을 대체할 수 있다는 건, 그 브랜드가 오랜 시간동안 사람 옆에 머물렀다는 것을 의미해요. 260여 년간 브랜드를 이어온 파버카스텔의 모토는 'Companion for Life(인생의 동반자)'에요. 처음 색연필을 만나는 시절부터 학교를 가고, 회사를 가고, 은퇴해서도 파버카스텔과 함께하기를 바라죠. 이를 위해 파버카스텔은 생애 주기별로 줄 수 있는 경험을 고려하여 제품을 만들거나 커뮤니케이션 해요. 유치원생 때 파버카스텔의 수채화 색연필로 칠하던 제가 직장인이 된 지금도 파버카스텔을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
|
|
파버카스텔은 연필과 색연필을 메인으로 여러 갈래로 파생돼요. 연령에 따라 성인용과 아동용이 있고 대상에 따라 일반인용과 전문가용, 종류에 따라서는 연필, 만년필, 볼펜 등의 필기구류와 채색 도구인 색연필, 파스텔 등이 있죠. 파버카스텔의 제품은 사용자 중심이라는 것이 두드러지는데요. 두 가지 제품을 소개해 드릴게요.
|
|
|
연필의 표준인 카스텔 9000 연필
진녹색의 카스텔 9000 연필은 파버카스텔을 대표하는 제품이에요. 1905년에 만들어진 카스텔 9000은 우리가 지금 쓰는 육각형 형태의 연필을 처음으로 고안한 제품이에요. 원래 초창기의 연필은 네모 또는 둥그런 모양이었는데요. 둥그런 연필은 책상에서 자주 굴러떨어지기도 하고, 제작 과정에서 버리는 나무의 양이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어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육각형의 연필은 한 번에 손가락에 닿는 면적이 좁고, 육각형 각 모양에 따라 연필을 돌려가며 쓰기 때문에 피로도도 훨씬 많이 줄어들어요. 연필심이 돌아가면서 사용되기에 한쪽만 많이 닳는 문제도 방지할 수 있어요.
|
|
|
카스텔 9000은 동시에 연필심에 대한 강도를 H(Hard/단단함)와 B(Black/진함)으로 나누어 표준을 만들었어요. 미술 시간 단골 준비물이었던 4B 연필 기억나나요. B는 블랙으로 농도는 진하지만 굉장히 부드럽죠. 종이 위에서 미끄러지듯 써져요. 그래서 스케치용으로 자주 쓰이죠. 반면 세밀한 표현에는 단단한 연필이 적합해요. 이처럼 용도에 따라 선택해야 하는 연필의 종류가 다른데요. 초창기에는 연필을 만드는 곳에 따라 연필심의 기준이 모두 달랐어요. 따라서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죠. 파버카스텔이 이를 파악하고는 연필의 강도와 농도의 기준을 16등급으로 분류했어요. 오늘날의 모든 연필과 샤프심이 이 기준을 따라 어딜 가든, 언제서든 동일한 규격을 가진 연필을 만날 수 있죠. 또 겉면의 진녹색은 친환경 수성페인트를 사용해 독성이 없고, 염료를 입히는 게 아니라 6번의 락커칠을 통해 손에 묻어나는 것을 방지합니다. 표준을 제시한 카스텔 9000은 그래서, 오늘날 연필의 표준이라고 불려요.
|
|
|
그립2001투톤 연필
파버카스텔의 인체공학적 접근이 돋보이는 연필이에요. 특히 연필을 쥐는 게 익숙하지 않은 아동들에게도 적합한데요. 인체공학적으로 손의 피로도가 덜 하고, 가장 안정된 형태인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졌어요. 여기에 손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기가 돋아있는 그립존을 만들었죠. 여기에는 SV공법도 적용되었는데요. SV공법은 세큐틸이라 불리는 제조 방법으로 연필이 나무와 분리되어 연필심이 빠지는 것을 막고 둘 사이를 더 강하게 결합하기 때문에 연필심이 쉽게 부러지지 않아요. 최초의 연필이 나무판자 가운데 연필심을 넣고 군데군데 접착제를 발라 만들어졌기에 잘 분리되었었거든요. 이를 해결한 공법으로 파버카스텔이 특허를 낸 기술이에요. 카스텔 9000에도 이 공법이 적용되었답니다.
|
|
|
이미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인 파버카스텔을 레터에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이 브랜드가 260여년을 지속해 온 노력이 인상 깊어서에요. 제품에 대한 마음과 제품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자세가 그러해요. 단어를 찾다보니 '책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고요.
|
|
|
1980년대, 파버카스텔은 브라질 프라타(Prata)에 여의도 면적의 30배에 달하는, 1만 헥타르 규모의 숲을 조성해요. 파버카스텔은 연간 23억 자루의 연필을 생산하는데요. 이를 위해선 15만톤의 목재를 필요로 해요. 상당히 많은 양이죠. 자신들의 브랜드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라도 목재공급 확보를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직접 숲을 만든 것이죠. 파버카스텔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파버카스텔의 숲이 조성된 곳은 원래 사막처럼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어요. 이곳에 숲을 조성하여 멸종 위기에 처한 지역을 보호하고, 많은 동물의 서식지가 되어 주도록 했습니다. 파버카스텔의 전 세계 공장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인증서를 받기도 했어요. 탄소배출권 판매가 허락된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이 산림 프로젝트는 콜롬비아에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어요.
|
|
|
파버카스텔은 회사가 오래 지속되려면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최상의 업무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해요. 이건 단순히 업무 시설만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파버카스텔은 불필요한 야근이나 강제적인 회식은 하지 않고 있어요. 출산하는 여직원이 늘어나자, 자녀들과 함께 출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에요. 파버카스텔은 약 104년 전인 1884년 세계 최초로 임직원 자녀를 위한 유치원과 유아원을 만들기도 했어요. 직원들을 위한 건강보험과 연금제를 시행하기도 했죠. 사내 건강보험을 시작하기도 했어요. 기업도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ESG 경영은 흔한 단어가 되었어요. 모든 기업이 ESG 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하죠. 파버카스텔의 자료나 기사들을 살펴보면서 ESG 경영이라는 단어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어요. 이런 거를 한다고 말하기 이전에 이미 200년 전, 이미 이러한 가치가 심어져 있었던 것이죠.
본 레터에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는 모두 '파버카스텔'입니다. ⓒfaber castell
|
|
|
파버카스텔은 가족 기업이에요. 가족 내에서 경영권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죠. 2017년, 처음으로 외부 경영인을 영입하긴 했지만, 여전히 파버 가문 내 사람이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어요. 소비자와 시장의 변화를 읽는 눈도 중요하지만, 옳은 것을 가려내는 자세와 세대가 교체될 때마다 이것을 다음 세대에 잘 전달하여 지켜온 것이 파버카스텔을 생활명품으로 만든 이유인 것 같아요.
레터를 작성하면서 '슈퍼노멀(Super Normal)'이라는 개념도 떠올랐어요. 디자인 영역에서 나온 개념으로 평범하지만 비범한 디자인, 화려하진 않지만 기능적으로 탁월한 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쓰이는 단어인데요. 사실 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생각 없이 쥐던 주변의 물건들을 다시 한번 보게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이었어요.
|
|
|
Editor 초이 | 매력적인 브랜드 뒤에는 늘 매력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