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억 속 최초의 수영을 떠올려 봅니다. 수영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어쩐지 저는 수영을 돌멩이레터 56호 | 레디투킥
준비됐나요?
제 기억 속 최초의 수영을 떠올려 봅니다. 수영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어쩐지 저는 수영을 할 줄 알아요. 그 시작을 더듬어 보면 그건 수영이라기보다 물놀이에 가까운데요. 우선 물속으로 들어간 다음 풀장 가장자리에서 몸을 웅크렸다 벽을 발로 차 앞으로 슝- 나아가는 거예요. 고작 2, 3초 만에 끝나는 허무한 동작이었을 텐데 어렸을 땐 돌고래 놀이라 이름도 붙여가며 그저 꺄르르 놀았던 것 같아요. 순간적으로 느끼는 속도감과 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느낌이 꼭 돌고래가 된 기분이었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은 몸이 바닥에 닿기 직전 팔을 휘저어 보고, 어느 날엔 발도 굴러보며 2-3초는 20초, 30초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엉터리 (하지만 생존은 가능한) 수영을 하는 어른이 되었어요. 하지만 엉터리면 뭐 어때요. 오늘 이야기할 브랜드는 물결님이 어떤 수영을 하든, 심지어 수영을 전혀 하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어요. 세상을 발로 차면서 물결님만의 물결을 만들 수 있길 응원하는 브랜드 '레디투킥(Ready to Kick)'을 소개합니다.
- 초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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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투킥은 수영의 재미를 다양한 방법으로 알리는 브랜드예요. 양수현 대표님이 만들고 이끕니다. 수영에서 발로 차는 동작을 킥(kick)이라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웃음소리 같기도 한 이 '킥'을 브랜드 이름에 꼭 넣고 싶었다고 해요.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양수현 대표님은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에서 고슴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브랜드 총괄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2022년 여름, 뉴닉을 떠나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오랜 바람을 레디투킥이란 브랜드로 세상에 선보였죠.
뉴닉 디자이너와 레디투킥 대표 사이에는 1년의 육아휴직이 있었어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보며 뿌듯하기도 했지만, 정작 대표님 자신은 멈춰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이렇게 스스로 정체되는 느낌은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으로, 앞으로 커리어는 어떻게 될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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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투킥
불안과 고민을 원동력 삼아, 양수현 대표님은 레디투킥의 첫 번째 킥을 실행해요. 일주일에 하루 육아에서 손을 떼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시작이었어요. 집과 분리된 작업실을 구하고, 매주 작업실에 나가 메모장을 펼쳤죠. 회사에 소속되어 있던 디자이너도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도 아닌 '양수현' 자체가 되는 시간을 가졌던 거예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 시간에 이름도 붙여주었어요. 많은 분이 머리를 맞댄 결과 '#양수현로그인'이라는 해시태그가 탄생했답니다. 엄마에서 양수현으로 신(scene)이 전환되는 느낌이 들면서 처음 보자마자 가슴이 울렁거렸대요.
이 시간을 통해 대표님은 지난 커리어를 돌아보고, 잘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점검했어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스스로 질문하고, 좋아하면서 또 잘하는 행위를 나열하다 보니 곧 '수영'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어요. 어릴 적 유치원 대신 유아체능단에 다녔던 덕에 수영이 익숙했던 데다가, 수영이라면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 재밌게 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또 수영은 언어 장벽이 없고 세상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이후 글로벌 진출이나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했을 때도 딱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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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투킥
"아이도 낳고 키워보니, 브랜드 못 낳고 못 키우겠나 하는 용기가 생기기도 했어요. 딸아이의 태명을 회사명으로 정하고, 아이 첫 생일에 사업자를 냈습니다. 사업자등록증을 볼 때마다 기분 좋은 책임감이 느껴져요." - 양수현 대표(STICKH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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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투킥
레디투킥의 첫 아이템은 수영모였어요. 양수현 대표님이 브랜드를 시작하면서 정한 세 가지 기준이 있는데요. 먼저 꼭 필요한 제품이어야 하고, 둘째로 이미 존재하는 제품이라면 개선점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이미 비슷한 일을 하는 곳이 있다면 그들이 못 하는 걸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수영이라는 큰 방향을 정한 뒤 야외 수영장에서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이 기준에 맞는 제품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수영모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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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투킥
아무래도 물이 있다 보니 수영할 땐 사진 남기기가 어려워요. 요즘은 방수 기능이 있는 카메라나 휴대폰이 잘 나오지만, 물에 홀딱 젖어 초췌해진 데다 딱 달라붙고 별다른 디자인도 없는 고무 모자를 쓴 모습을 굳이 남기고 싶지 않은 경우도 많고요. 레디투킥이 처음 선보인 'FLOWER DIP' 꽃 수모는 수영할 때 꼭 필요하면서,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 동시에 시중의 대형 수영복 브랜드에서는 만들기 어려운 제품이었어요. 신나게 수영하다가도 언제든 당당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원색 원단에 과감한 꽃장식을 달아 밝고 통통 튀는 느낌을 더했어요. 봉제 전문가가 한 땀 한 땀 손으로 단 꽃에는 심지를 넣어 물에 들어가도 축 처지지 않게 하는 디테일까지도 신경 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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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투킥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동그란 핏이에요. 평평한 원단을 동그란 입체 모양으로 만들려면 천을 여러 개의 패턴으로 쪼개서 봉제해야 하는데요. 그만큼 공정도 까다로워지고, 비용도 올라가지만 동그란 모양새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또 아무리 패턴을 잘 만들어도 원단에 힘이 없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원단도 신중하게 골랐어요. 이중 원단의 도톰한 두께감이 힘 있게 모양을 유지해 주고, 안감에는 메시 소재를 사용해 도톰해도 빠르게 잘 마르도록 했답니다. 이렇게 만든 레디투킥의 첫 제품은 리오더에 들어갈 만큼 큰 사랑을 받았어요. 작년 말에는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귀여운 산타 수영모를 만드는 재밌는 시도를 하기도 했어요. 흔히 수영하면 여름을 떠올리기 쉽지만, 수영은 겨울에도 계속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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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투킥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은 수영 모자의 다음 제품으로 양수현 대표님은 원래 수영 가방을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많은 분이 레디투킥 수영 모자에 어울리는 수영복이 필요하다는 얘길 하셨대요. 생각해 보니 화보를 준비하면서도 레디투킥에 어울리는 수영복을 찾기 어려웠던 게 떠올랐죠. '잘 모를 땐 고객에게 묻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대표님의 원칙에 따라 최근 '비아플레인(viaplain)'과 함께 수영복도 함께 출시했어요. 편안함과 미니멀을 추구하는 '비아플레인(viaplain)'과 레디투킥이 만나 차분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주는 라벤더색이 인상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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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투킥
좋은 제품을 만들고,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과 나란히 레디투킥은 브랜드의 메시지도 촘촘하게 전해요. 이름에 담긴 뜻을 다시 떠올려 보면 레디투킥이 전하고 싶은 말은 명료하죠. 레디투킥은 많은 이들이 세상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물결을 만들어 가길 바라요. 그런 마음 담아 남궁호 작가에게 작업을 의뢰해 흑백 4컷 만화를 만들고 이를 제품에 라벨로 달았어요. 만화에는 귀여운 오리 캐릭터가 나오는데요. 이 오리는 다른 오리와 달리 작은 발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고 당당히 집을 나서요. 오리에겐 오리발이 있거든요. 최근에는 레디투킥 수영 모자 착용법을 소개하는 만화 EP.2로 라벨을 바꿨는데, 세상을 향해 당당히 발을 구르자는 메시지는 그대로 담았어요.
오늘 레터의 인사말에 '수영을 전혀 하지 않더라도' 레디투킥을 즐길 수 있다는 말 기억하시나요? 레디투킥은 수영 제품 외에 수영을 다룬 책도 큐레이션해요. 물에 들어가지 않고도 수영을 경험하고, 수영의 재미를 느끼게 하고 싶었던 양수현 대표님은 그 방법으로 책을 선택한 거예요. 감상을 담은 짧은 글과 함께 인상 깊었던 구절을 소개하고 있답니다. 작년 여름엔 콜링북스(callingbooks)와 함께 팝업을 열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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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투킥
나아가 레디투킥은 더 많은 사람이 직접 수영을 경험할 수 있으면 해요. 이런 바람은 '레디투킥 스위밍클럽'이란 프로그램으로 이어졌어요. 레디투킥 스위밍클럽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물을 감각하고, 물속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수영이 아직 어색하거나, 딱딱한 수영 강습과 맞지 않는 분들을 위해 일일 프로그램과 웰컴 키트를 함께 구성했죠. 일일 프로그램의 상세 일정은 '물과 인사하기, 친해지기, 물과 함께 놀기' 같은 것들이에요. 웰컴 키트에는 레디투킥 실리콘 수영모자와 수건, 프로그램 안내 통신문이 담겨있고요. 물놀이 후에 먹으면 어느 음식보다 맛있는 육개장 사발면도 빠질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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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투킥
이렇듯 라벨이나 스위밍클럽 등 작고 소소한 장치를 통해 브랜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지만, 사실 한눈에 들어오는 화보 이미지만 봐도 레디투킥이 추구하는 바는 듬뿍 느껴져요. 아기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모든 연령의 모델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카메라 앞에 섰어요. 모두 전문 모델이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레디투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정자 할머니는 아주 오랫동안 수영을 즐기셨던 분이에요. 예샘 님은 그동안 다녀온 실내 수영장 리스트를 만들 만큼 수영에 진심인 분이고요.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어딘가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정말 사랑스럽답니다.
예전에 읽었던 어느 책에서 수영이란 행위에 대해 '물속과 물 밖, 두 가지 세상을 알게 해주는 일'이라고 표현했던 걸 오래 기억하고 있어요. 레디투킥 홈페이지에서도 제품 카테고리를 '물속에서/ 물 밖에서'로 나눠놓아 신기했죠. 물속 세상은 호흡의 자유가 있는 물 밖과는 또 다른 자유로움이 있어요. 오늘 레터를 쓰며 물이 주는 이런 자유로움이 레디투킥의 본질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양수현 대표님도 레디투킥이란 브랜드를 어떤 틀에 가두기보다 유연한 마음으로 대하고 싶다고 해요. 수영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처럼 유연하고 현명하게 나아가고 싶다고요. 물결님도 이런 레디투킥과 함께 킥!할 준비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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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omment ✏️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발레리노를 꿈꿨던 빌리는 우여곡절 끝에 영국 로열발레학교 오디션을 보지만, 심사단 앞에서 빌리가 춘 춤은 발레를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조금 엉성해요. 그때 한 교수가 빌리에게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묻는데, 빌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갑자기 웬 발레 영화 이야기인가 싶은가요? 다른 게 아니라 레디투킥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가 이런 댓글을 발견했거든요. '수영하고 있으면 그냥 막 웃음이 납니다요 킥킥킥' 빌리의 대답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잠시 머리가 멍해지는 댓글이었어요. 우리가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하게 될 일들을 떠올립니다. 일이 잘 풀릴 때도 있지만, 살다 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기분이에요. 좋아서, 관심이 있어서, 재밌어서 시작했을 텐데 그런 감정은 금세 잊고 그 일을 더 잘하는 것만 쫓게 되죠. 빌리의 엉성한 턴에도, 허우적에 가까운 누군가의 수영에도, 해도 해도 부족한 실력만 드러나는 것 같은 제 일에도 '그냥 기분이 좋은' 원초적인 즐거움이 분명 있을 거예요. 물결님에게 오늘 레터가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그 즐거움을 다시 찾을 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초록입니다.
공간과 텍스트를 좋아하고 이 둘의 힘을 믿어요. 즐겁고 편안한 상태를 꿈꾸며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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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님, 돌멩이레터는 오늘 57호를 마지막으로 첫 번째 시즌을 마무리합니다.
1년하고도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물결님들이 전해주셨던 목소리를 찬찬히 되짚어 보고
더 새롭고 산뜻한 모습으로 찾아올게요.
3주 뒤, 6월 8일 목요일에 돌멩이레터 두 번째 시즌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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