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님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요? 여행 떠나기 어려운 날이 오래 이어지면서 안녕하세요, 물결님 🪨 물결님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요? 여행 떠나기 어려운 날이 오래 이어지면서, 저는 부쩍 제가 사는 도시인 '서울'을 더 꼼꼼히 보기 시작했어요. 꽤 먼 거리를 걸어서 가보기도 하고 광화문부터 동대문 일대를 자전거로 달려보기도 하면서요. 가끔 야근 후 택시를 타고 새벽에 잠긴 서울을 총알처럼 통과하며 눈에 담기도 하는데요. 매일 봐왔던 풍경이 익숙하기도 또 문득 새롭기도 하더라고요. 그동안 비행기로 멀리 떠날 생각만 했지, 서울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시라는 걸 미처 몰랐어요.
오늘 물결님에게 던져드릴 돌멩이는 이런 서울에 잘 녹아들어 있는 '호텔 안테룸 서울(Hotel Anteroom Seoul)'입니다. 개인적으로 일상이 주는 편안함과 비일상이 주는 특별함 사이 균형을 잘 갖춘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은 곳이에요. 서울에 방문할 생각이 있거나, 지금 서울에 계신다면 관심 가지고 오늘 레터를 읽어보세요. Aleph의 곡도 함께 추천합니다. 잔잔한 도시 소음이 깔린 인트로와 일상에서 오는 질문에 조곤조곤 답하는 목소리가 좋아요. 제가 밤 서울을 거닐며 자주 들었던 노래랍니다.
- 초록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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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여름, 호텔 안테룸 서울(이하 안테룸)이 가로수길에 처음 문을 열었어요. '호텔 안테룸'은 도쿄 긴자의 무지 호텔 프로젝트를 진행한 곳으로 유명한 UDS(Urban Design System)의 또 다른 호텔 브랜드인데요. 2011년 교토의 한 기숙사를 호텔·레지던스 복합시설로 개조해, 낙후되어 있던 동네에 예술과 문화라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호텔 안테룸 교토가 그 시작이에요. 이후 오사카 나하, 서울 가로수길에 차례로 지점을 내며 예술과 로컬 문화를 담고 나아가 아시아를 잇는 공간이 되겠다는 뜻을 펼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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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룸(anteroom)은 건축 용어로 '대기실'이라는 뜻이에요. 호텔 안테룸은 이를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목적지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공간'이라고 정의해요. 이름에 담긴 뜻을 알고 나니 자연스레 떠오른 곳이 있는데요. 바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라우렌치아나 도서관(Laurentian Library, 16C)의 계단이에요. 미켈란젤로는 열람실 입구에 어두운 계단을 설계하고, 누구나 밝은 지혜의 세계로 들어서기 전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했어요. 이 계단은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을 경험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손꼽히죠.
안테룸은 물결님이 서울이라는 도시를 경험할 때, 이 계단과 같은 역할을 안테룸이 해내길 바란 것 같아요. 잠시 숨을 고르고 저무는 오늘에서 해 뜨는 내일로 넘어가는 그 사이를 메워주는 공간 말이에요. 비단 오늘과 내일뿐 아니라 물결님의 일상과 이상을, 편안함과 특별함까지도 이어줘요. 안테룸은 이렇게 쉼과 연결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쉼표(,) 같은 공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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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룸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커다란 작품이 몇 점 보여요. 여느 호텔 로비처럼 화려한 조명이나 값비싼 라운지체어는 보이지 않아요. 한편에 마련된 리셉션 데스크와 작은 매대(이 매대의 비밀은 조금 뒤에 밝혀집니다)를 제외하면 갤러리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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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은 총 세 가지 타입이 있어요. 기본 타입인 스튜디오 룸, 작은 단 위에 침대를 올려둔 로프트 룸, 한강과 남산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층 아뜰리에 룸 이렇게요. 모든 객실엔 가구부터 비품까지 목재와 돌, 가죽 등 자연 소재를 주로 사용했어요. 화이트 앤 우드 톤으로 잘 정돈된 인테리어는 낯선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오래 머물렀던 것 같은 아늑한 느낌을 줘요.
그 외에 물결님이 안테룸 객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디테일을 하나씩 소개해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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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 보통 호텔에 가면 샤워 가운이 있죠. 사실 잘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요. 안테룸에는 샤워 가운 대신 잠옷이 준비되어 있어요. 따로 잘 때 입을 옷을 챙길 필요가 없어 한결 가볍게 방문할 수 있죠.
퍼퓸 스프레이 당연한 얘기지만 호텔에서는 세탁이 어려워요. 다음 날 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 경우도 많고요. 안테룸은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특유의 세심함을 발휘합니다. 모든 객실에 그랑핸드와 협업해 만든 푸르스름이란 퍼퓸 스프레이를 두었어요.
차 (tea)객실에 티백 정도는 흔히 있지 않냐고요? 안테룸은 여기에도 신경을 썼어요. 객실에는 기성 티백 대신 노르스름과 불그스름이란 티가 준비되어 있어요. 차에 대한 진정성과 밀크티로도 유명한 오렌지리프와 함께 만들었답니다.
고체 샴푸 & 워시 바올해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호텔은 1회용 어메니티를 무료로 제공할 수 없도록 법이 바뀌었어요. 많은 호텔 브랜드가 대용량 제품으로 어메니티를 대체하고 있는데요. 위생 문제로 한동안 말이 많았죠. 이에 안테룸이 낸 해결책은 간단하고 탁월해요. 바로 고체 샴푸와 워시 바예요.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브랜드 동구밭과 협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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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하루 혹은 며칠간 머물며 체험한 후 마음에 들면 직접 구매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아까 잠깐 언급했던 매대의 비밀 기억하시나요? 리셉션 데스크 옆 작은 공간 말이에요. 매대에 있는 물건들은 다름 아닌 안테룸 어메니티였어요. 객실에서 제품을 써보고 체크아웃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어메니티를 구매할 수 있게끔 동선을 설계한 거죠.
생각해보면 잠옷, 비누, 퍼퓸 스프레이 등은 지극히 일상적인 물건이에요. 하지만 은근히 시도하기 어려운 것들이기도 하죠. 물결님은 혹시 호텔에 머물렀던 시간이 신기루처럼 느껴진 적 없나요? 일상과 180도 다른 호텔에서의 경험은 물론 즐겁지만 씁쓸함을 남기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중에서 내일도 모레도 느낄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안테룸은 달라요. 안테룸에 머무르는 동안은 일상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안테룸을 떠나면서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물결님의 일상으로 가져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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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보면 빌딩 앞에 조형물이나 미술 작품이 있는 걸 물결님도 본 적 있을 텐데요. 도시 한가운데 그렇게 조각이나 분수, 미디어아트 등이 있는 이유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때 전체 건축비 중 일부를 예술 작품에 할애하도록 법으로 정해놨기 때문이에요. 시민들에겐 일상에서 예술을 접할 기회를, 작가들에겐 작품 활동 기회를 주기 위함이죠. 예술이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데엔 이런 인위적인 노력도 얼마간 숨어있다는 사실이 재밌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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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룸은 예술을 위해 도시와 건축이 해야 할 일을 이미 잘 알고 있어요. 지하 2층에 있는 GALLERY 9.5는 젊은 아시아 아티스트들의 전시 및 아트 토크, 영상 상영회 등이 열리는 교류의 장인데요.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샌드위치가 아트 디렉션을 맡아 운영하고 있어요. 엄선된 작품들은 갤러리뿐 아니라 로비나 객실, 레스토랑 곳곳에 그림이나 음악으로 존재해요. 물결님이 조금 더 자주, 가까이서 예술을 만날 수 있도록 한답니다.
가장 높은 곳 19층엔 아트북 스토어 카페 & 바 TELLER'S 9.5가 자리하고 있어요. 한강과 남산을 한눈에 담으며 내 집처럼 편안하게 즐기다 가길 바라는 마음을 이 공간에 담았다고 해요. 서가와 북 토크 등의 이벤트는 모두 예술 서적과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동네서점 더레퍼런스가 큐레이션 했어요. (GALLERY 9.5와 TELLE'S 9.5 호텔에 묵지 않아도 방문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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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 가구 브랜드 데스커와 함께 가로수길 뒷골목 상생 프로젝트인 '뒤로수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뒤로수길의 색깔 있는 상점들을 소개하는 <어쩌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지도>를 제작해 TELLER'S 9.5 방문객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죠. 그 외에도 작품과 함께 아티스트가 직접 쓴 편지를 객실에 두는 등 안테룸은 로컬과 사람, 사람과 예술을 이으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호텔이란 본디 집은 아니지만, 여정 가운데서만큼은 돌아갈 유일한 곳이라는 묘한 특성이 있죠. 때론 호텔 그 자체로 여정이 되기도 하고요. 안테룸은 이 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똑똑하게 활용하는 것 같아요. 일상처럼 편안한 환경 속에서 이상(理想)적인 특별함을 선사하고, 그 모든 경험이 다시 물결님의 삶 일부로 스며들게 하니까요.
안테룸이란 쉼표 다음에 올 물결님의 일상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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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목요일,
돌멩이레터 6호가 발행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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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comment ✏️
텍스트와 도시는 비슷한 구석이 많은 것 같단 생각을 종종 해요. 문장을 이루는 촘촘한 단어는 도시를 이루는 작은 집과 건물인 거죠. 그 사이로 크진 않지만, 꼭 필요한 조사 같은 샛길들이 나 있고요. 텍스트에 강렬한 키워드가 있듯 도시에는 랜드마크가 있고, 한 문장에서 다른 문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접속사 같은 다리들이 있죠. 특히 글을 소리 내 읽고, 도시를 활보할 '사람'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둘은 더욱 닮아있어요. 안테룸은 이렇게 텍스트 같은 도시 속에서 쉼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공간이에요. 물결님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안테룸에서 서울이란 도시를, 가로수길이란 동네를 소리 내 읽어보길 바랍니다. 이렇게, 쉼표, 에, 집중,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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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돌멩이를 던진 이는 에디터 초록입니다.
공간과 종이, 텍스트를 좋아하고 셋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서점을 사랑합니다. 글과 공간에 관한 브랜드를 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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